경제시평
‘진보 역행하는 진보정책’ 논란
미국의 대표적 진보언론 뉴욕타임스가 최근 눈에 띄는 칼럼을 게재했다. 간판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가 쓴 ‘우리 진보진영이 서부해안에 무슨 짓을 한 건가?(What Have We Liberals Done to the West Coast?’(6월 15일자)는 제목부터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미국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서부해안지역 도시들이 엉망진창(mess)이 돼버렸다”는 첫 문장부터 신랄했다. 최남단 샌디에이고에서 최북단 시애틀에 이르기까지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당이 강력한 지배력을 구축하고 있는 도시들 대부분이 노숙자와 범죄 증가, 행정기능 장애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주의(progressivism)를 내세우며 펼친 정책들이 진보로 귀결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주택정책을 단적인 예로 들었다. ‘주택공급은 인권의 영역’이라며 공화당이 집권한 플로리다주나 텍사스주보다 진보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주택보급률은 되레 더 낮다고 돌아봤다. “우리 진보진영이 추구하는 가치와 그 성과물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미국 진보진영이 추구하는 가치와 성과 간 간극 벌어져
미국 서부지역에서 ‘진보주의 실정(失政)’ 문제가 제기된 지는 꽤 됐다. 뉴욕타임스와 함께 진보언론의 쌍벽을 이루는 워싱턴포스트가 “(민주당이 장기집권하고 있는) 캘리포니아가 종말적(apocalyptic)으로 변하고 있다”는 주민들의 한탄을 담은 기사를 게재한 게 4년 전이다. 환경원리주의를 밀어붙인 에너지정책으로 인해 곳곳에서 대규모 정전이 속출하고, ‘약자보호’를 내건 고용규제 강화로 우버 기사의 대량실직 등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역정부가 ‘캘리포니아 드림’을 ‘악몽’으로 바꾼 것으로 지적되는 사례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나친 토지사용 제한으로 중·저소득층의 주거불안을 고착화하고, 취약계층 지원 확대를 명분으로 한 부유세 신설 등 세금부담 증가와 규제 강화로 기업과 사람들의 ‘캘리포니아 탈출’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실리콘밸리 1호 기업’ 휴렛패커드가 텍사스로 본사를 옮기는 등 ‘탈 캘리포니아’ 행렬이 꼬리를 잇는다. 기업과 고소득자들의 이탈은 주 정부의 재정수입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취약계층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든다.
미국 진보정치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곳은 서부지역만이 아니다. 연방인구조사국은 최근 주목되는 통계를 발표했다. 미국 인구가 2022년 7월~2023년 7월 사이에 160만명 늘어났지만 뉴욕(10만1984명), 캘리포니아(7만5423명), 일리노이(3만2826명) 등 8개 주는 오히려 감소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블루스테이트(blue state, 민주당이 주 정부와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곳)’다. 사람들의 거주지 선택은 ‘발로 하는 투표’로도 불린다. 진보정책의 취지와 결과 간 간극을 그냥 넘겨선 안된다는 자성이 이어지는 이유다. 4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 등 한국의 진보진영이 참고해야 할 대목일 것이다.
‘진보' 기치로 압승한 민주당 등 한국의 진보진영 참고할 대목
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의 압도적 의석수를 무기로 쌀 목표가격제도를 담은 양곡관리법과 노조 강성 파업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노동관련법(노란봉투법) 개정안 등 여당은 물론 경제계가 반대하고 있는 법안을 밀어붙일 기세다. 농민과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꼭 필요한 법령이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지만, 농민들을 영세한 ‘농사’ 수준에 영원히 가둔 채 농업구조조정을 막는 등의 역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정책 취지와 다른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각계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수렴의 정치가 필요한 이유다.
“철옹성 지지기반에 대한 안주가 진보진영을 이념일변도 정치로 이끌었고, 난국을 자초했다.” 뉴욕타임스의 크리스토프가 내린 ‘우리 진보진영의 문제점’ 자가진단이 남의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