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배신 논란’ 끝은…어게인 1997이냐, 어게인 2012냐
원희룡, 1997년 사례 들어 “대통령-대표 갈등하면 정권 잃는다”
2012년 대선 때 이명박-박근혜 충돌했지만 재집권 성공 사례도
정치 이해 좇은 갈등이냐, 여권 혁신 내세운 차별화냐 성패 갈라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를 앞두고 후보들 사이에서 ‘배신 논란’이 극심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후보 사이가 심상찮은 것을 겨냥해 경쟁자들이 ‘배신’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원희룡 후보는 한 후보를 향해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갈등하면 대선은 필패”라고 공격하면서 1997년 김영삼-이회창 갈등 사례를 꼽았다. 반면 2012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갈등이 첨예했지만 여당이 재집권에 성공했다. 국민의힘 차기 대표는 어느 쪽 길을 걷게 될까.
원 후보는 2일 SNS를 통해 “1997년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대표의 갈등은 한나라당을 10년 야당으로 만들었다. 이회창도 민심을 내세워 대통령과 차별화했다”고 지적했다. 원 후보는 “역사는 대통령과 당 대표의 갈등이 정권을 잃게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은 한 후보가 대표가 되면 민심을 앞세워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민의힘은 재집권에 실패할 것이란 주장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 대법관을 감사원장과 총리로 발탁하면서 몸값을 키워줬다. 이 총리는 자신의 법적 권한을 주장하다가 김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면서 사퇴했지만, 김 대통령은 이 총리를 신한국당 선대위 의장으로 재발탁했다. 여당 대선주자가 된 이 후보는 김 대통령에게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비자금 의혹을 수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김 대통령은 오히려 수사 연기를 지시했다. 이 후보는 김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했고, 이 후보 지지자들은 김 대통령 마스코트 화형식까지 벌였다. 김 대통령은 이인제의 탈당과 출마로 초래된 보수 분열을 방관했다. 이 후보는 39만표차로 패했다. 김 대통령과 이 후보는 여권의 쇄신과 변화보다는 서로의 정치적 이해를 놓고 갈등하다가 재집권에 실패한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갈등했지만 재집권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원 후보는 “극심한 갈등을 빚지 않은 이명박·박근혜 때는 정권을 재창출했다”고 해석했지만,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비대위원장도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전력투구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 대통령과 대선후보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던 박 위원장은 이 대통령 임기 내내 긴장관계를 형성했다. 박 위원장은 이 대통령 임기 3년차인 2010년 6월에 실시된 ‘세종시 수정안’ 표결을 앞두고 직접 반대 토론에 나서 부결을 주도했다. 이 대통령은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2011년 12월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당권을 잡은 박 위원장은 민심을 앞세워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주력했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국회의원 회기 내 불체포특권 포기와 성역 없는 대통령 친인척 비리 수사 등 쇄신책을 내놨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내세워 이 대통령의 747(성장률 7%,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권 경제)과 대조를 이뤘다. 2012년 4월 총선에서는 친이를 겨냥한 물갈이 공천을 감행했다. 박 위원장은 여권의 쇄신과 변화를 통해 이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하면서 2012년 12월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한 후보도 원 후보의 ‘배신자론’을 반박했다. 한 후보는 1일 연합뉴스TV에 출연해 “(대통령이) 어떤 길을 가든, 잘못된 판단을 하든 무조건 지지해 주지 않으면 그게 배신인가”라며 “제가 가장 원만하고 건강하게 당정관계를 이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을 ‘묻지마 추종’하지 않는다고 해서 배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관계’는 서로의 정치적 이해만 좇아 충돌하느냐, 아니면 여권의 쇄신과 변화를 놓고 차별화하느냐에 따라 유권자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1997년 대선 때는 대통령과 여당 후보가 정치적 이해만 놓고 갈등을 빚자 유권자들이 냉정한 심판을 내렸지만 2012년 대선 때는 여당 후보가 쇄신과 변화를 통해 대통령과 차별화하자 유권자들이 재집권의 길을 열어줬다는 것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