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나 홀로 호황’ 미국이 금리 내릴 유인이 있을까
하반기에 금리인하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시중에 팽배해 있다. 채권시장 부동산시장 가계부채 등에서 이미 이러한 기대가 선반영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은행에 대해 미국보다 앞서 ‘금리를 내리라’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6월 16일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금리를 인하할 환경이 조성되었다”라고 말했고, 바로 다음날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서민경제의 핵심이 금리 문제라는 점에 당정이 나섰으면 한다”라고 언급하면서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하가 이어지고 있다”라고 했다. 그 외 다수의 여당 의원들이 미국에 앞선 선제적 금리인하를 주문하고 나섰다.
반면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은 금융통화위원회가 독립적으로 결정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강조한다. 한은총재는 한은 창립 74주년 기념사에서 “섣부르게 통화완화 기조로 선회한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지면 그때 감수해야 할 정책비용은 훨씬 더 클 것”이라며 물가가 목표수준에 이른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확신이야 보기 나름일 것이므로 향후 한은의 행보를 보기 위해서는 한은총재가 취임 당시에 했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을 강조하면서도 미국 연준으로부터의 독립은 어렵다는 생각을 피력한 바 있다. 현재 2%에 이르는 양국간 기준금리 격차를 중시한다는 것이고,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인식을 보여준다.
양국간 기준금리 차이는 1400원대까지도 위협하는 원달러환율에 그대로 반영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4년 1분기 시장안정화를 위한 외환시장 순거래액 추이’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만 18억2000만달러의 외화가 순유출되었다.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개입한 규모로 볼 수 있다. 2021년 3분기부터 합해서 보면 얼추 700억달러가 넘는다.
이례적으로 한은총재는 지난 5월 해외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외환시장에 개입한 사실을 인정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금리격차는 고환율이 유지되는 이유가 되고,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올리기에 외환보유고를 사용해 환율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사정이다. 금리를 선제적으로 내린다면 한미간 금리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고 이는 곧바로 1400원대 환율을 각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겨우 안정되어 가는 듯 보이는 물가는 수입물가를 중심으로 다시 불안해 질 것이다.
미국 금리인하에 목매지만 현실은 ‘글쎄’
만약 한은이 정치적 이유에서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면 하반기 금리인하의 관건은 미국의 기준금리인하에 달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전망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시나리오나 태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제시한 점도표, 개별 위원들의 발언 등이 영향을 미치고 이는 곧 선물시장에서의 가격변동으로 시장이 어디에 베팅하는지가 드러나곤 한다. 보통은 경기침체에 방점을 두면 금리인하를, 물가상승에 방점을 두면 현수준 금리유지 혹은 인상을 고려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가전망과 경기전망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금리를 1번 내리나 2번 내리나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구조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애초 2022년 초 금리를 올리기 시작할 때 연준의 입장은 공급망 문제로 불거진 인플레이션에 대해 직접 개입할 수단이 없으니 수요를 그보다 더 죽여 물가를 잡겠다는 것이었다. 즉 금리인상으로 인위적인 경기침체를 유도해서 공급위축보다 수요를 더 위축시킨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 구상은 철저히 들어맞지 않고 있다. 물가는 잡지 못하고 고금리만 지속시키는 꼴이 되었다.
미국경제는 2020년 마이너스 2.2% 성장한 이후 내리 3년간 연평균 3.4%의 성장률을 보였다. 2024년 들어서도 생산 투자 고용 소비와 같은 경제지표들은 예상치를 넘어 선다. 유럽 일본 중국 등 세계경제의 주요지역과 비교해 보면 어디를 봐도 미국 경제는 나홀로 호황이다.
2023년 11월 6일자 본지 컬럼에서 필자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이 발효된 2022년 8월 이후 이 법들과 관련돼 미국이 끌어간 제조업 투자 프로젝트 규모를 소재로 삼아 연준이 그리는 경기침체의 그림이 나오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기에 한가지 더 보태면 미국의 고금리가 끌어당기는 금융투자다. 블룸버그(6월 16일자)는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근거해서 전세계의 해외투자 가운데 미국이 차지한 비중이 1/3에 이르렀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코로나사태 이전에 18% 선이었던 미국의 비중이 무려 15%p 급증한 것이다.
나홀로 구조 신흥국 위기 부르게 돼 있어
멀리 갈 것도 없다. 한국예탁결제원이 보관하는 국내 개인투자자의 미국 주식금액이 860억달러를 넘어섰다. 이 수치가 2019년 말에는 84억달러 수준이었다니 가본 적 없는 길을 가고 있는 미국 증시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어디 한국만 그럴까. 전세계의 투자자금이 미국으로 빨려들고 있다. 거시경제지표와 증시지표 공히 이대로 좋은데 왜 금리를 손댈까? 정치적인 이유로 한두번 내리는 시늉을 할 수 있겠으나 별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국 스스로 금리를 내릴 유인이 약하다는 것이지 언제까지나 지속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나홀로’ 구조는 반드시 신흥국의 위기를 불러왔다. 시간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