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동북아 3국이 직면한 도전

2024-07-03 13:00:02 게재

소비와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베짱이의 나라이고 한국은 개미와 같은 나라이다. 국가의 경제활동을 측정하는 일반적 잣대인 국내총생산(GDP) 구성 항목들 중 소비는 당장의 효용을 불러일으키는 활동이고, 투자는 미래의 소비를 위해 현재의 욕망을 억제하는 행위다.

미국경제는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투자비중은 낮은 반면 한국은 정반대이다. 2023년 미국의 GDP에서 민간소비와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67%와 21%이고 한국 GDP에서 민간소비와 투자의 비중은 각각 49%와 32%이다. GDP 대비 투자 비중이 30%를 넘어서는 국가는 한국과 중국 정도 밖에 없으니, 한국은 왕성한 투자 국가에 다름 아니다.

미국은 베짱이, 한국은 개미와 같은 나라

일반적으로 한국처럼 투자를 열심히 하는 동아시아 국가 국민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구미 국가보다 낮은 이유는 시스템 자체가 욕망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국과 비슷한 성장모델을 쫓아온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G2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중국과 같은 큰 규모의 경제가 5% 성장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GDP의 39%를 투자에 쓰고, 소비 비중은 41%에 불과한 중국과 충분히 소비하면서도 2% 넘게 GDP가 성장하는 미국을 수치만 가지고 단순비교할 일은 아니다.

다만 미국은 매우 예외적인 사례다. 미국처럼 덜 투자하고, 많이 소비하는 국가는 찾기 힘들다. 2007~2008년 부동산 버블이 터지기 직전 미국 가계의 저축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했다. 저축 없이 버는 족족 모두 소비했다는 의미다. 자국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이 나라 밖에서도 통용되는 기축통화국의 이점이 작용했을 수도 있어 다른 나라들이 미국과 같은 호사를 누리며 살기는 어렵다.

미국은 소비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투자해 생산하는 분업구조는 1970년대 이래로 자리잡아온 역할분담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높은 투자비중은 ‘제조업 강국’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미국이 소비만 했던 것은 아니다. 미국도 투자를 했지만 이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행한 것과 같은 유형의 설비투자가 아니었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무형의 경제에서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냈다. 미국은 변이(variation)를 만들어 내는 데 치중하면서 새로운 기술적 원천을 발굴했다. ‘열번 틀려도 한번만 맞으면 대박’을 치는 혁신이 내재화됐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정해 놓은 규칙을 수용(retention)하면서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빡빡한 공정’을 수행해왔다. 대량생산과 통일성, 집단주의 등이 동아시아 경제의 내재적 특성들이다.

이 같은 풍토에서 미국과 같은 변이는 수용되기 어려웠다. 대량생산 체제 하에서 표준을 벗어나는 국외자(outlier)는 비용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경제에서 유행했던 ‘식스 시그마’는 평균에서 벗어나는 불량을 잡아내는 과정으로서, 동아시아 경제의 정체성에 가장 잘 맞는 품질관리 프로그램이었다. ‘튀는 놈이 정 맞는 경제’에서 혁신이 나오기는 힘들다.

글로벌 분업구조 변화로 동북아 3국 각자도생 치열해질 듯

앞으로는 미국의 표준을 따르는 제조업 강국으로 살아온 안온한 삶을 유지하는 데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담당했던 제조공정을 미국이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제조업을 등한시해온 미국이 곧바로 동아시아 국가들을 대체하긴 힘들겠지만 지난 50여년간 지속돼 온 글로벌 분업구조에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진핑 체제에서 경제 운용에 정부의 입김이 커지고 있는 중국, 기초과학은 강하지만 민간의 활력이 약한 일본, 중국과 일본에 비해 훨씬 탄력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한국 등 개미처럼 살아온 동북아 3국의 각자도생이 치열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