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정원(庭園)’에 빠지다

2024-07-03 13:00:01 게재

국가정원 지방공원 ‘경쟁하듯’ 추진

차별성 없는 ‘따라하기’ 지속성 의심

전진선 경기 양평군수는 1일 민선 8기 2주년 기자회견에서 두물머리·세미원의 국가정원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이완섭 충남 서산시장은 가로림만 국가정원 지정을 위한 독자 용역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강원에서는 정선군이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가리왕산을 올림픽 국가정원으로 조성할 계획이고, 춘천시는 정원도시 조성을 목표로 유관기관과 협력지원단을 구성하는 등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종시의 민선 8기 핵심 공약사업 중 하나도 정원도시 조성이다.

전국 지자체들이 정원 조성에 한창이다. 지난달부터 뚝섬한강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서울국제정원박람회장을 찾은 시민들이 다양한 모습의 정원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서울시 제공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정원에 빠졌다. 최근 정원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인기를 끌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의 계기로 삼으려는 의도로 정원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한다는 목적도 포함돼 있고, 친환경 생태 같은 긍정적 도시 이미지를 만들려는 의도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도시가 전남이다. 전남도는 지난해 크게 흥행한 순천만 국가정원을 올해 4월 재개장하고, 10개 시·군에는 특색 있고 차별화된 지방정원을 1개씩 조성 중이다. 또한 전국 최초로 민간정원 보완사업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정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차적으로는 지역 주민들에게 쾌적한 정주환경을 제공하고 더불어 지역의 자원·문화와 연계해 관광객을 불러들일 소재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서울시도 올해 국제행사로 확대한 서울국제정원박람회를 진행해 대성황을 이뤘다. 5월 뚝섬한강공원에 문을 연 박람회는 개최 5일 만에 방문객이 100만명을 넘어섰고, 지난 2일까지 366만명을 불러들였다. 서울시는 도시 전체를 녹지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1인당 공원 면적이 2014년 16.37㎡에서 지난해 17.90㎡로 증가했다. 서울시는 전담부서 이름을 푸른도시여가국에서 정원도시국으로 변경했다.

울산시도 태화강 국가정원 일대를 정비해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하겠다고 나섰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십리대숲, 황톳길 맨발걷기 등이 인기를 끌며 연간 500만명이 다녀가는 울산의 대표 관광지가 됐다. 울산시는 또 2025년까지 삼산·여천 쓰레기매립장 35만㎡를 파크골프장과 녹지공간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개방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여러 지자체들이 정원 조성을 주요 정책으로 삼고 추진 중이다. 정원도시를 표방하고 나선 지자체만 30여곳에 이른다. 현재 등록된 국가정원은 2015년 지정된 순천만국가정원과 2019년 지정된 태화강국가정원 두 곳이다. 지방정원은 10곳이다. 경기 양평군 세미원이 2019년 6월 가장 먼저 지방정원으로 등록됐고, 이후 전남 담양 죽녹원, 경남 거창 거창창포원, 강원 영월 동·서강정원(연당원), 전북 정읍 구절초정원 등이 잇따라 등록을 마쳤다. 지난해 한해에만 6곳이 지방정원으로 등록됐다. 경북 경주 경북천년숲정원, 인천 강화 화개지방정원, 부산 사상 낙동강정원 등이다. 전북 부안은 줄포만노을빛정원과 해뜰마루정원 두 곳을 한꺼번에 등록했다. 이외에 지자체가 조성 중인 지방정원도 36개에 이른다.

정부도 지자체의 정원 정책을 지원하고 있다. 우선 산림청은 국·공유지에 실외정원을, 도서관·역사 등에 실내정원을 조성해 각 지역에 생활 속 정원 기반을 확충할 계획이다. 또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성공을 계기로 국내 정원관광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도 구축한다. 지역의 정원을 관광산업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미다. 이 밖에도 불안 스트레스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지자체들과 함께 정원치유 프로그램도 진행할 계획이다. 행전안전부는 지자체 정원 정책을 지역활성화 전략의 하나로 보고 즉극 지원하기로 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정원은 국민 삶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와 탄소중립 실현 효과도 있는 만큼 지역마다 특색 있는 정원문화를 조성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이 앞 다퉈 정원 조성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주민들의 수요나 지역활성화 방안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지역 정원과 차별화 전략도 고려 대상이다. 단순히 따라하기 정책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기반시설 위주의 정원 정책이 예산낭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류광수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이사장은 "현재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정원은 국민의 수요와 사회적 기능을 고려할 때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류 이사장은 “지방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혁신 방안으로 맞춤형 공공정원 모델이 필요하다”며 “지역의 독특한 자원과 여건을 고려한 차별화된 정책, 민간정원과 연계한 지속가능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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