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석 밀리고, 협치 안되고, 민심 떠나고…‘삼면초가’ 여당
거대 야권의 상임위원장·탄핵소추·특검법 공세에 ‘속수무책’
표 대결 지고 협상도 안돼 … 민심 앞세운 ‘고잉 퍼블릭’ 불가능 윤 대통령 거부권에만 의존 … 한동훈 “9명 이탈 막을 수 있나”
집권여당 국민의힘이 거대 야권의 공세에 무기력한 모습이다.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김홍일 방통위원장 탄핵안 발의→검사 4명 탄핵안 발의→채 상병 특검법 표결 추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의석수가 적어 표 대결에서 밀리고 △여야 대치로 협상이 안되고 △대통령 지지도가 낮아 민심으로 야당을 압박하는 ‘고잉 퍼블릭(going public)’도 어려운 ‘삼면초가’에 처한 모습이다. 최후 보루인 대통령 거부권조차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여당이 무기력증을 탈출할 특단의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다.
3일 민주당 등 야권은 ‘채 상병 특검법’을 국회 본회의에 상정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전날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예고했지만 거대 야권은 필리버스터 개시 24시간 뒤 재적 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찬성하면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킬 수 있는 국회법으로 맞서고 있다. 야권 의석수가 5분의 3을 훌쩍 넘기 때문에 여당의 필리버스터는 특검법 처리를 24시간 지연시키는 효과만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앞서 야권이 김홍일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표결을 추진하자, 김 위원장은 직무정지를 피하기 위해 ‘변칙 사퇴’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이동관 당시 방통위원장이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사퇴해 직무정지를 피했다. 방통위원장이 직무 정지되면서 방통위 기능이 수개월 동안 마비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6개월마다 방통위원장이 사퇴하고 새 방통위원장을 임명하는 고육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2일 이재명 대표를 수사해왔던 검사 4명의 탄핵소추안도 발의했다. 의석수가 적은 국민의힘은 본회의 불참으로 반대 뜻을 표했을 뿐 민주당의 ‘탄핵 공세’에 무기력하게 당했다. 민주당은 법사위에서 검찰 수사를 면밀히 조사한 뒤 탄핵안을 표결에 부친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 등 11개 상임위원장을 선점했지만, 이 역시 막아내지 못했다. ‘국회 보이콧’으로 맞섰지만 결국 역부족을 인정하고 아무런 성과 없이 국회로 복귀했다.
여당이 거대 야권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장면은 △적은 의석 수 △협치 불발 △낮은 국정지지도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우선 의석수에서 너무 밀린다. 야권이 180석을 넘다보니 모든 상임위에서 우위인데다, 필리버스터까지 중단 시킬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여당이 표 대결에서는 이길 재간이 없다. 윤석열정권 이후 2년 동안 여야가 첨예한 대치를 이어오면서 야권의 협조를 얻을 가능성도 없다. 어떻게든 야권 협조를 얻어야 야권의 독주를 견제하면서 여권 입법을 성사시킬 텐데, 협조를 얻어낼 특단의 조치는 보이질 않는다. 윤 대통령의 낮은 국정지지도도 문제다. 역대 대통령은 여론 지지를 앞세워 야당을 압박하는 ‘고잉 퍼블릭’ 전략을 쓰곤 했는데, 윤 대통령은 지지도가 워낙 낮다보니 ‘고잉 퍼블릭’도 불가능한 처지다.
여당은 최후 보루로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만 믿는 눈치지만, 이마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제기한 한동훈 후보는 2일 원희룡 후보와 특검법 공방을 벌이면서 “민주당의 무지막지한 특검법을 막기 위해 어떤 대안이 있나”라며 “그냥 지켜보자는 것인지, 9명 이탈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인지, 그 방안을 내가 오히려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탈표를 막을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만으로는 야권의 특검법 공세를 버텨낼 수 없다는 우려다.
여권 인사는 2일 “국민의힘이 이렇게 무기력하게 밀리는 상황은 총선 이후 충분히 예고됐던 것 아니냐”며 “거부권만 믿고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다. 판을 바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여권 핵심부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 의석수만 믿고 ‘무리수’를 두다가 자멸하거나, 사법리스크로 치명상을 입으면서 정국 구도가 급변하는 상황을 기대하는 눈치다. 윤 대통령 임기가 3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여당 내부의 이탈도 거의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엿보인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