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견 칼럼

지구촌 강타한 ‘극우 신드롬’, 멍드는 세계경제

2024-07-04 13:00:01 게재

‘여자 뭇솔리니’라 불리던 조르자 멜로니가 2022년 이탈리아 총리가 됐을 때만 해도 세계는 ‘설마’ 했다. 이탈리아의 특수현상이지 유럽 전역으로 번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 하지만 2년 뒤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달 6~9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기존과 마찬가지로 중도파 진영이 득표율 1, 2, 3위를 기록하며 무난히 의석 과반을 확보했다. 그러나 개별 국가들로 보면 상황은 충격적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해 벨기에 헝가리 오스트리아 라트비아 등지에서 극우정당이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독일과 폴란드 등지에서도 극우정당이 주류 정당을 밀어내고 득표율 2위로 올라섰다.

후폭풍은 계속됐다. 지난달 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승부수로 3년 일찍 치러진 프랑스 국민의회(하원) 선거에서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이 압승을 거둔 반면, 마크롱이 속한 르네상스당 중심의 앙상블(ENS) 연합은 3위로 참패했다.

2차투표가 남아있기는 하나 이원집정부제인 프랑스에는 국민의회의 다수당이 총리를 배출하게 돼 있어 20대인 조르당 바르델라(29) RN대표가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에서 제2차세계대전 후 극우정당이 처음으로 집권하게 된다.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마크롱 참패 원인을 “강해진 반이민 정서와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이후 늘어난 증오범죄, 2년째 지속되는 물가상승 압박 등이 발목을 잡았다”고 분석했다.

2일에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반이민정책을 예고한 네덜란드 극우 주도의 새 연립정부가 출범했다. 그간 네덜란드는 유럽연합(EU)의 강력한 지원군 역할을 해왔으나 연정에 참여한 농민시민운동당(BBB)이 농민 지지를 기반으로 한 정당이라는 점에서 EU ‘그린딜’의 강도높은 환경규제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의 거대한 집이었던 유럽연합 곳곳에 쭉쭉 금이 가기 시작한 양상이다. 벌써 ‘넷플릭스’에선 수백개 국가로 쪼개져 무정부적 극한 혼란상태에 빠진 유럽을 배경으로 한 SF물까지 나올 정도다.

세계적 인플레 재연, 경기둔화 우려

세계를 더 전율케 하는 건 ‘글로벌 제국’ 미국에서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이 급속히 높아졌다는 점이다. 전세계 극우, 포퓰리스트의 대부격인 트럼프는 노쇠한 바이든 대통령의 ‘노욕’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의 재집권을 ‘재앙’으로 표현해온 세계 각국은 벌써부터 대책 마련에 전전긍긍이다.

트럼프는 재집권하면 국내적으로 대대적 감세를 추진하고 대신 모든 국가에 10%의 보편적 관세, 중국에 최소 60%의 대규모 관세를 추진하겠다고 호언한다. 또한 유가를 낮추기 위해 석유채굴을 3배 늘리고 전기차 특혜도 폐지하겠다고 한다. 바이든이 시행한 일련의 정책을 싹 뒤집겠다는 것이다.

유럽 극우정당들도 마찬가지 대대적 감세와 국수주의 정책을 내걸고 있다. 프랑스의 극우 RN은 우선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한 ‘더 많이 내고, 더 늦게 받는’ 연금개혁 철회를 시사했다. 여기에 더해 생필품 부가가치세는 전면 폐지하고 에너지 부가세는 인하하겠다고 했다. 관련 재정비용만 240억유로(약 35조7715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EU 규칙에 반하는 ‘프랑스 기업의 정부조달시장 참여 특혜’라는 국수주의 정책까지 예고한 상황이다.

세계 대형은행 모임인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총부채는 313조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30%에 달한다. 특히 정부 재정적자 규모가 91조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세계 GDP와 맞먹는 규모로 불어났다.

이런 마당에 전세계적으로 극우적 포퓰리즘 세력이 집권하면 재정적자는 더욱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국채 수익률(금리) 급등으로 이어져 간신히 잡은 인플레 재연과 경기둔화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TV토론 후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지자 미 연준의 금리인하 시사에도 미국채 금리가 연일 급등하고, 마크롱 참패 후 프랑스 국채금리 역시 급등하는 것도 이런 우려의 산물이다.

한국경제 경고등 켜졌는데 여야는 정쟁만

개별산업에 대한 타격도 예상된다. 대표적인 게 전기차와 이차전지다. 극우세력은 ‘환경재앙’은 뒷전이고 눈앞의 ‘인기’만 생각한다. 때문에 글로벌 환경규제의 대대적 후퇴로 가뜩이나 캐즘(일시적 수용정체)으로 고전중인 전기차 섹터가 우선적으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전세계적 극우세력 득세의 뿌리는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에 따른 ‘민생 악화’다. 극우는 그 해법으로 포퓰리즘과 고립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반이민’이란 인종차별주의도 곁들이고 있다. 1929년 세계대공황 이후 제2차세계대전 발발 사이의 불안한 국제사회 정세와 흡사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당연히 글로벌 시장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경제에도 경고등이 켜진 양상이다. 하지만 지금 여야 지도부는 정치생명을 건 ‘극한정쟁’ 중이다.

뉴스앤뷰스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