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윤 대통령 탄핵청원 100만명 돌파에도 애써 ‘무시’
“여론재판 아니다” … 남발·국정방해 프레임 가동
‘146만명’ 문재인 청와대 땐 “겸허히 받아들겠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청원에 동의하는 국민이 100만명을 넘었지만 용산 대통령실이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의가 아닌 야권의 국정방해 획책 정도로 치부하는 기류다. 4년 전 탄핵청원에 직면했던 문재인 청와대와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숫자 중요하다면 문 대통령도 진작 탄핵” = 대통령실 관계자는 4일 “대통령실은 늘 민심에 겸허히 귀기울이고 있다”며 “다만 탄핵은 여론재판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라면 146만 명의 탄핵소추 청원을 받은 문재인 대통령도 진작에 탄핵됐어야 한단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앞서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에 3일 오후 102만명을 넘어섰다. 지난달 20일 게시된 지 13일 만이다. 청원자는 윤 대통령의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및 주가조작 의혹 등 5가지 법률 위반 혐의를 탄핵사유로 명시했다.
청원 게시판은 4일 오전에도 접속 지연현상이 일어났다.
이 청원은 20일 이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청원심사소위원회 회부 여부를 결정한다. 소위 논의를 거치면 이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본회의 부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3일 “심사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청문회를 열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탄핵청원에 대해 ‘국회의 일’이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방어선을 쳤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앞서 2일 “어떤 명백한 위법의 사항이 있지 않는 한 탄핵이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치적으로 이 탄핵을 계속해서 언급하면서 우리의 국정이 잘 진행될 수 없게 만드는 이런 상황이 온 것 같다”며 “이 상황을 잘 주시하고 있고, 국회 상황을 좀 더 지켜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정방해에 이어 ‘탄핵남발’ 프레임도 가동시켰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3일 “민주당은 반문명적 헌정 파괴 시도와 전대미문의 입법폭력 쿠데타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민주당의 이재명 전 대표 수사검사 탄핵 추진을 비판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청원 어디에? = 그러나 현 정부 대통령실과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탄핵청원의 대응방식부터 정치여건까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라는 지적이다.
먼저 태도다. 문재인 청와대는 2019년 6월 ‘북핵개발 묵인’을 사유로 올라온 대통령 탄핵 국민청원이 25만명을 돌파하자 “우리 정부가 더 잘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져본다”고 했다. “국민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다. 국민들이 정부의 철학과 정책에 공감하고 격려해주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탄핵청원이 146만명에 달하던 이듬해 2월에는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다양한 뜻”이라며 “어느 의견도 허투루 듣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자세를 낮췄다.
청원의 양상도 달랐다.
문 대통령 탄핵 청원 당시에는 탄핵 반대 청원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지지층 결집이 이뤄졌다. 결국 탄핵 반대청원에 동의하는 사람이 150만명을 넘어서면서 탄핵 청원 동의자보다 오히려 많아졌다. 그러나 현재 윤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결집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바탕에는 지지율 격차가 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문재인 청와대가 청원 답변을 내놓던 시기 문 대통령 지지율은 45%대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총선참패 후 최근 지지율이 25% 수준에 머물고 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정부여당이 탄핵여론에 대한 태도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총선 후 오히려 민의와 멀어지는 현실인식을 보이고 있다”며 “지지율 관리에 손을 놓고 있으니 야당의 탄핵 시도가 더 노골화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