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탄소중립과 우리의 미래
예부터 ‘명태’는 우리가 가장 즐겨 먹던 생선 중 하나였다. 동해에서 풍부하게 잡혀 가격도 부담없고 맛도 일품이었다. 다양한 이름으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던 명태가 동해에서 사라졌다. 처음에는 명태를 남획해 어족자원이 고갈된 줄 알았다. 그러나 해양과학자들이 연구에 나서면서 과잉어로보다는 수온상승이 더 큰 원인으로 밝혀졌다. 온난화의 영향은 동해 명태에만 그치지 않는다. 올해도 북반구는 전례 없는 무더위와 이상기후를 겪고 있다.
전세계가 기후변화를 실감하며 온실가스 특히 이산화탄소 감축에 한목소리를 낸다. 2021년 영국에서 열린 UN 기후협약 총회에서 탄소중립 합창은 절정에 달했다. 주요 선진국은 2050년, 개도국은 206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국가 차원의 2030년 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시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앞다퉈 탄소배출제로를 경영 목표로 설정했다.
탄소 다배출 업종 중심으로 탄소중립핵심기술 개발 역점
탄소중립으로 가는 여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첫째, 에너지안보 위기가 닥치자 개도국은 물론 유럽 주요국마저 석탄발전을 확대했고, 석유 메이저 기업들은 화석연료 생산을 늘렸다. 둘째, 막대한 비용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지연되고 있다. ‘기후행동 100+’에서 다수의 대형투자사가 탈퇴하며 기후변화 투자 붐이 가라앉았다. 셋째, 혁신적 탄소중립 기술개발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가령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는 아직 실증 단계를 넘지 못해 탄소감축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탄소중립을 향한 R&D는 확대되고 있다. 기술혁신은 연속적이기보다는 단속적으로 일어난다. 자연계에서도 혁명적 진화는 갑자기 나타난다. 흔들리지 않는 R&D 투자는 혁신적이고 실효적인 탄소중립 기술을 낳는 비결이다. 우리 정부는 제조업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23년부터 8년간 총 9352억원 규모의 ‘탄소중립핵심기술개발사업’을 역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탄소 다배출 4대 업종(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반도체·디스플레이)에 현재까지 총 1230억원을 투입했다.
배출량의 40%를 차지하는 철강산업에 450억원의 가장 많은 예산을 집중해 수소환원로와 전기용융로 설계, 철스크랩 사용증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데모플랜트급 실증기술을 개발하는 후속사업도 기획을 시작했다. 차질없이 수소환원제철이 도입된다면 철강산업의 혁신적인 온실가스 배출 저감이 가능하다.
석유화학 산업은 나프타분해공정의 전환기술개발에 210억원을 사용했다. 전기가열 분해로 기술과 부생가스를 기초원료로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시멘트 분야는 유연탄 대체 폐합성수지 재활용 기술, 석회석 비중을 낮춘 혼합시멘트 개발, 그리고 고성능 클링커와 고강도 혼합재 제조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는 식각·증착·세정과정에서 사용되는 불소계 온실가스를 저탄소 공정가스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대체가스의 온실효과 측정법과 배출량 모니터링 기술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또한 4대 업종의 탈탄소 성과 공유와 제조업계 확산을 위해 ‘탄소중립 그랜드 컨소시엄’을 가동하고 있다. 신뢰성 있는 탄소 저감량을 평가할 수 있도록 올해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의 인증평가 체계를 시범적으로 구축하고 향후 타업종으로 평가 표준과 인증 체계를 확산할 예정이다.
동해 명태가 돌아오는 ‘탄소중립 여정’ 대한민국의 시대적 사명
온난화가 이어지면 명태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반면 기후변화 대응에 성공하면 명태는 동해로 귀환할 수 있다. 명태의 운명은 인류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탄소중립은 자연생태계의 지속가능성 측면과 함께 탄소무역장벽과 같은 경제적 유인과도 직접 관련되어 있다. 명분과 실리, 그 어느 쪽을 살펴보더라도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통한 ‘탄소중립으로의 여정’은 글로벌 제조 강국, 대한민국의 시대적 사명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