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김용갑의 '전투적 보수주의’와 보수 성공의 길
한국 정치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가 보수의 정체성과 행위규범에 대한 의식적 사유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보수라고 자처하고 여겨지는 이들, 특히 국민의힘 계열 정당들은 정치적 지배세력, 적어도 주류로 존재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보수가 뭐냐” “보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 등에 대한 정치인들의 물음과 진지한 탐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분단과 전쟁, 독재정권 시기를 거치며 진보에 대해 막대한 힘의 우위를 점해왔던 터라 자신에 대한 성찰의 기회도 필요성도 딱히 없어서였는지 모른다.
아무튼 보수는 ‘무이념의 이념세력’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시대변화 속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지켜야 하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하는지에 대한 논의와 실천을 맹렬히 펼쳤던 적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도 기억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경우가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과 총무처장관, 3선(15~17대)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용갑의 ‘보수우익 분기(奮起)론’이다. 김용갑은 한국 민주주의의 정초선거로 불리는 1988년 총선 결과 조성된 여소야대 구도에서 한국이 좌경화 끝에 베트남식 공산화 통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하고 “이 땅의 우익은 죽었냐”고 외치며 ‘좌익척결’을 주창해 세간에 논란을 일으켰다. 김용갑은 전두환·노태우(육사 11기) 신군부 쿠테타세력이 발탁한 정치인답게 강경한 ‘전투적 보수주의자’였던 셈이다.
“보수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기회
그의 전투적 보수주의가 지금의 국민의힘에, 특히 보수의 정체성과 행위규범의 설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당을 이끄는 리더십 층위에서 정세 상황에 따라 끄집어내 사용하는 전략자원으로 저장되어있는 것 같기는 하다.
지난 총선에서 당을 이끌었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반독재민주화 운동에 복무했던 86세대의 청산, 즉 ‘운동권 청산론’을 주창했던 것만 봐도 그러하다. 경쟁 정당의 대표들을 사법적 판결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앞장서 범죄자로 몰았던 ‘이재명·조국심판론’의 설파 역시 마찬가지다. 그 담론들에는 ‘운동권=범죄집단=척결대상’이라는 인식의 전제가 깔려 있다. 경쟁상대를 적으로 몰아 사멸시키려는 태도와 행동방식을 기본으로 설정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김용갑의 전투적 보수주의는 본래의 취지나 본인의 의사 여부와 상관없이 죽지 않았다. 군부와 공안세력과 그런 인식틀과 코드를 공유할 수밖에 없었던 검찰과 같은 권력기구 출신 및 동조세력이 집권세력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한에서는 그럴 것이다.
그런데 전투적 보수주의는 물론이고 한국의 보수 전체를 대표하고 주도한다는 현 집권세력 주류는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와 국민의힘의 연이은 총선 패배만 갖고 하는 말이 아니다. 보수의 주요 근간이라고 할 군의 입에서조차 “이게 보수냐”라는 부정적 물음을 던지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물음에 대해 현 집권세력 주류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 상병 특검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불거진 논란과 해병 전우들의 문제제기를 야권의 정권 흔들기 정략으로 몰고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중에 100만을 넘어선 윤 대통령 탄핵청원에서 볼 수 있듯이 현 집권세력에 대한 민심이반의 폭과 깊이가 더해지고 있다.
김용갑의 처신에서 찾는 보수의 길
이는 비록 스스로 던진 게 아니지만 “보수가 뭐냐”라는 물음은 보수의 정체성과 행동규범을 살펴 볼 기회를 제공한 것이기도 하다. 마침 당 대표 선거 중에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와 다른 보수노선의 정립을 둘러싸고 경쟁을 벌일 기회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이때 전투적 보수주의 추종자든 아니든 당권주자들이 상기할 게 있다. 김용갑이 전두환에게 직선제 개헌안 수용을 적극 주장했다는 점이다. 명동성당 농성장을 직접 찾아가 들은 현장의 생생한 민심과 목소리에 바탕한 것이다. 또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쓴소리 하기를 주저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는 진짜 지켜야 할 게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었고 의식적 사유(사리분별)를 수행했던 것이다. 이것의 교훈적 의미를 잘 새겨야 성공 보수의 길을 찾아낼 수 있다. 고작 ‘친윤 vs 반윤 싸움’에 머무를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