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시대 빅테크의 인터넷 공정기여

2024-07-09 13:00:02 게재

로마제국 전성기 상징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격언은 당시 사방의 어떤 길을 택하더라도 결국 로마와 연결되도록 설계된 우수하고 효율적인 도로 인프라에서 비롯됐다. 당시 40만km에 달하는 도로 중 일부는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잘 정비된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수송·교통·연락의 효율성이 천년제국 번성의 밑바탕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수의 빅테크에 네트워크 이용 집중

인프라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관되게 작용해 오늘날 광범위하게 구축된 인터넷망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고 국민 생활 편의성을 높이는 핵심 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거듭되는 기술 발전과 투자로 실시간·저지연·대량의 트래픽 전송이 가능해짐에 따라 콘텐츠 제공사업자(CP, Contents Provider)의 창의적인 서비스 또한 꽃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ICT 서비스 없는 일상은 상상조차 어렵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 무선데이터 트래픽 규모는 최근 4년간 약 2배 증가해 2023년 12월 월간 110만테라바이트(TB)를 넘어섰다.

한편 과기정통부 통계에 따르면 구글 넷플릭스 메타 등 트래픽 규모 상위 5개사 서비스 비중이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40%를 초과하는 등 소수의 빅테크에 네트워크 이용이 집중되는 모습이다. 데이터 트래픽 폭증은 인터넷망 유지관리에 적잖은 부담이 돼 이제 안정적인 망 유지를 인터넷 제공사업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만의 책임으로 한정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국내 ISP는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해 지난 4년간 누적 34조원 이상의 자본을 투자해 왔다. 인터넷망의 주 이용사업자인 대형 CP의 공정기여 현황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제 대형 CP는 검색엔진·SNS·멀티미디어를 넘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로봇 등 차세대 산업에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빅테크들은 기술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AI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어, 이들의 서비스는 불과 상용화 3년 만에 음성·이미지·영상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사람과 대화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신기술 저변 확대에는 초저지연 데이터 전송 환경의 튼튼한 뿌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진일보한 데이터 처리 역량을 위한 지속적인 인터넷망 투자의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ISP와 CP의 공동 협력은 필수적

전세계적으로도 CP의 인터넷망 공정기여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추세다. 올 5월 도이치텔레콤은 메타를 상대로 제기한 망 이용대가 소송에서 승소해 인터넷망 제공에 대한 요금청구권을 인정받았다. EU 집행위원회 또한 DNA(Digital Network Act) 제정을 통해 망 이용에 따른 대가 협상을 제도화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고대 로마 도로는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제국 전체를 하나로 연결하는 중추이자 번영의 대동맥이었다. 현대 인터넷망도 사회를 구석구석 연결하는 신경망이자 ICT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 AI 등 기술의 발전에 따라 콘텐츠 서비스가 우리 생활에 밀접해질수록 폭증하는 트래픽을 수용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인터넷망 중요성도 이에 비례해 증대된다. 그렇기에 인터넷망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ISP와 CP의 공동 협력은 필수적이다.

시장자율적 문제해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제는 국회와 정부가 공정한 기준의 나침반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통해 ICT 생태계 선순환과 이용자 편익 증진을 모두 달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손혁민 가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