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시대 노후보장방안
위기의 사회보험, 보험료 인상으로 해결 ‘과몰입’말아야
프랑스 독일 등 조세방식도 도입해 문제 풀어가 … “일시적 조세 지원으로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
인구 고령화와 고용형태의 다양화로 기존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의 재정 부담은 제도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국민의 든든한 생활지킴이로 역할하기가 어렵게 된다. 때문에 다가온 사회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사회보험 제도 개선 시도에 대한 딜레마가 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저복지를 고려할 때 보장성의 약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보험료로 이를 모두 감당하도록 하는 것을 어떤 정치집단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감세’를 통해 자산 축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복지 제공으로 간주해 왔고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중이 2020년에도 37.2%에 이르는 상황에서 근로소득자에 대한 보편 증세의 의미를 가지는 사회보험료율 인상은 정치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인구고령화에 대응해 지금의 ‘저부담-저복지’ 체제를 ‘중부담-중복지’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사회보험료 인상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사회보험료만으로 대응하는 경우는 대폭적인 요율 인상이 불가피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사회보험료 수입 확보가 어렵다면 다른 서구 국가들의 경험에서처럼 적극적으로 조세를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보험의 재정부담을 가입자 사용자 중심에서 정부까지 포함하는 이른바 3자부담 형태로 전환을 고려하는 것이 제도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타당할 수 있다. 이에 국내 노후소득보장체계와 보건의료 체계에서 조세를 투입해야 하는 정당성 등을 검토해 본다
앞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보험료 부담은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결과적으로 노후생활은 불안정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지난 20여 년 이상 이어진 한국의 초저출산은 향후 급격한 총인구 감소와 노인인구의 비중 증가를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총인구수는 5167만명이지만 2070년이 되면 3718만명으로 줄어들고 65세 이상 노인은 같은 기간 898만명에서 1768만명으로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총인구는 2025년에 줄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로 인해 경제활동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과연 급증하는 복지지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의 복지재정 문제는 사회보험 재정 문제에 집중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보장위원회(2020)에 따르면 일반 재정에 의한 복지지출은 2020년 GDP의 4.5%에서 2050년 5.1%로 서서히 증가한다. 반면 사회보험 지출은 같은 기간 GDP의 8.0%에서 19.4%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인구 고령화와 고용형태 다양화에 재원 확보 비상 = 우리나라 사회보험 재정 문제는 사회보험료로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가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 사회보험에서 보험료가 주요한 재원이기는 하지만 보험료로만 충당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보험의 재정에서 재원 혼합은 서구 복지국가에서 이미 시행해 왔으며 사회보험에 대한 조세 투입 비중은 증가했다.
사회보험에 대한 조세 투입에 대한 정당성은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최근 들어 필요성이 더 증가하는 것은 인구와 고용형태의 변화에서 볼 수 있다.
첫째, 인구 고령화 때문에 전체 소득 가운데 주로 임금소득에 부과하는 보험료 만으로 사회보험 재정을 유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인구고령화 하에서 임금소득에 의존하는 경제활동 인구의 비중이 줄어들게 되는데 연금과 건강보장 급여 지출에서 이를 사회보험료 만으로 충당하려고 하면 향후 경제활동인구의 부담은 지나치게 증가하게 된다. 흔히 소비세는 역진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이 부담하는 소비세를 활용하여 사회보험 재원을 일부 충당하는 것이 경제활동 인구의 과다한 부담을 다소 완화할 수 있다.
둘째, 노동환경 혹은 고용형태의 변화는 근로소득에 부과하는 사회보험료 중심의 부과에 대한 전환을 필요로 한다. 최근 들어 근로자도 아니고 자영자도 아닌 이른바 특수형태종사자와 플랫폼노동종사자가 증가하고 있다. 사회보험제도가 안정적 고용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근로자 중심으로 발달해왔는데 고용관계가 불안정하고 사용자도 특정하기 어려운 근로형태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까지 모두 포괄하는 제도로 나아가는데 한계가 있다. 이에 대응해 사회보험료 부과대상 소득 자체를 근로소득 이외의 소득으로 확대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해외국가 사회보험 재원에 조세 비중 늘어 =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국가에서 사회보험에 대한 조세 투입은 오래전부터 다루어져 왔다. 프랑스와 독일은 대표적으로 사회보험 중심으로 연금과 건강보장을 구축한 국가들로서 사회보험료 비중이 높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지만, 이들 국가의 사회보험 재정 개혁 방안은 상이하게 전개됐다.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제도를 구성하고 있는 프랑스에서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지 않다. 사회보장목적세(CSG) 도입 이전인 1990년에 프랑스 사회보험의 재정 분담은 사회보험료가 96.3%, 조세가 3.7%였다. 이제는 사회보험료의 비중이 6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사회보험 중심의 사회보장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재원의 부담 측면에서는 사회보험료 중심에서 사회보험료와 조세의 분담 방식으로 전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보험료가 가지는 역진성 문제와 기업의 비임금노동비용이라는 문제점에 대해 프랑스는 주로 사회보장 조세인 CSG를 통해서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사회보장의 재정 분담은 2022년 기준 사용자가 33.8%, 피보험자가 30.4%, 국가가 34.1%를 차지할 정도로 3자 부담에 기초하여 재정이 이뤄져 있다. 1991년에는 국가의 부담이 26.5% 수준으로 이보다는 훨씬 낮았었다는 점에서 국고의 역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독일에서는 사회보험에 대한 조세의 비중과 역할이 큰데 프랑스처럼 근로소득 이외의 소득을 통해 사회보험 재원을 직접 충당하려는 주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독일에서는 줄곧 일반 조세를 중심으로 사회보험 재정에 대한 조세 지원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사회보험에 대한 조세투입은 국가마다 상이한 접근으로 이루어졌다. 분명한 것은 여러 국가에서 사회보험 재정에서 조세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보험에 조세 투입 정당성 = 우선 한국은 사회보험료 인상에 어려움이 있다. 자산기반 복지국가라는 독특한 역사적 유산이 있어 자산 형성을 생활안전망 구축의 핵심 수단으로 삼아왔다. 국가에 의한 복지보다는 개인의 책임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산 축적의 기회를 줄이는 증세나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저항이 크다.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2023)에 따르면, 2093년까지 국민연금기금 적립배율을 1배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2025년에 당장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7.86%로 높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 9%에서 2~3%p를 높이는 것조차 실패했던 지난 20여 년 넘는 시행착오를 고려했을 때,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일부 높인다고 하더라도 재정안정화를 이룩할 수 있는 수준으로의 인상은 불가능하다. 건강보험료 역시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하는 가운데 건강보험 지출이 고령화로 급증하는 상황에서 근로소득 중심으로 부과하는 건강보험료만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공적연금 경로를 고려한 조세투입 방안 = 우리나라 공적연금 체계는 무기여연금인 기초연금과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초연금은 65세 노인 중 소득하위 70%에게 2024년 기준 월 33만4810원을 제공하는 부조제도라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 가입 기회가 부족했던 노인을 위해 중요한 제도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초고령화 사회에서 영구적으로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게 이런 급여를 제공하는 것보다 중위소득 80% 이하 등과 같은 소득기준으로 실제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지원을 하는 방안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또 최근 65세로 새롭게 편입하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소득과 자산을 많이 축적하고 있어 ‘소득하위 70%’에 해당하는 소득인정액이 높아졌다.
기초연금 재정 부담은 크게 높아진다. 기초연금 예산은 2022년 현재 16조1000억원으로 GDP 0.8% 수준이다. 하지만 2060년이 되면 기초연금에 의한 조세 투입이 GDP 2.8%에 이를 전망이다. 기초연금에 대한 상당한 국고지원이 유지되는 가운데 국민연금까지 조세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는 필요하다.
하지만 기초연금 제도 효율화를 위해 ‘중위소득 대비 80% 적용’으로 변경하는 등 대상자 비중을 줄여나가면 이를 통해 절감되는 국고를 국민연금 지출에 사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한국 보건의료를 고려한 조세투입 방안 = 현재 건강보험의 보험료 수입의 구성을 보면 2022년 현재 건강보험료 수입은 76조8000억원인데, 이 중에서 직장가입자가 66조9000억원으로 85% 이상을 차지하며 그 중에서 근로소득에 부과하는 보수월액보험료가 66조8000억원, 소득월액보험료는 1100억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지역가입자 부과체계에서 재산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낮추면서 자영자 역시 소득중심 부과로 바뀌고 있다. 피부양자 요건을 강화하면서 노인들에게는 중장기적으로 연금소득 중심으로의 부과체계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 부과체계는 근로소득과 보수 외 소득에 대해서 부과된다. 보수외 소득에 부과되는 소득월액보험료의 비중이 매우 적은 것은 소득월액보험료에 대한 부과가 실제로는 가입자 각각의 보수외소득 가운데 연 2000만 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부과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으로 직장가입자의 소득월액보험료의 부과 하한 역시 더 낮아지는 것이 소득중심 부과체계에 부합한다.
그런데 소득월액보험료는 외형적으로는 조세의 비중을 넓히는 것이다. 소득월액보험료는 건강보험료로 분류되지만 건강보험의 경우 기여에 연동된 급여 차등을 두지 않기 때문에 조세의 성격이 있을 뿐 아니라 소득월액보험료의 부과 하한을 점진적으로 낮추게 되면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CSG와 거의 동일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건강보험 재정의 20%를 감당해야 하는 국고 지원이 실제로는 15%에도 미치지 못하는 부분도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
한편 한국의 사회보험료율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기 때문에, 사회보험료율을 높이든지 아니면 급여를 낮추든지 해야 할 것이라고 문제를 단순화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성숙한 복지국가라고 하는 국가들에서조차 사회보험료율 인상은 언제나 어려운 과제였다. 따라서 자산기반복지국가의 역사적 경로를 거쳐왔던 우리나라에서 사회보험 재정을 확보하는 과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