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소하던 보이스피싱 사기, 다시 증가세
올들어 1~5월 8434건 발생
대출빙자형 수법 크게 늘어
경찰, 10월까지 특별단속
#. 지난 3월,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A씨는 ‘○○저축은행 팀장입니다. 대출 상담을 원하시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대출이 필요하던 A씨가 문자메시지에 포함되어 있던 인터넷 주소(URL)를 클릭하자 저축은행 직원과 텔레그램 대화방으로 연결되었고, A씨는 상대방의 요구에 따라 개인정보와 기존 대출정보를 넘겨주었다.
이후 A씨는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기존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며, 지정한 계좌로 돈을 보내면 대신 상환해 주겠다”는 저축은행 직원의 말을 믿고, 30회에 걸쳐 1억5000만원을 B씨 명의 계좌로 송금했다.
하지만 3일 후 텔레그램 대화방은 삭제되고 피해금은 이미 현금으로 인출된 상태였다. 전형적인 대환대출 빙자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죄에 당한 것이다.
한때 감소 추세였던 보이스피싱 피해가 올해 상반기 들어 증가세로 돌아서 경찰이 총력 대응에 나섰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5월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총 8434건, 피해 금액은 총 256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피해 건수는 15%, 피해 금액은 50% 각각 증가했다.
보이스피싱 피해는 2019년 3만7667건으로 최대치를 찍은 뒤 지난해 1만8902건으로 절반가량 줄었다가 올들어 건수와 액수가 모두 증가하는 추세다.
유형별 피해 건수를 보면 검찰·경찰·금융감독원 등 기관을 사칭하는 수법은 15% 감소한데 반해 대환대출 등 대출빙자형 수법은 61% 급증했다.
기관사칭형의 경우 건당 피해액이 2062만원에서 3462만원으로 증가하는 등 전체 피해액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대출이자 절감을 위한 온라인 대환대출 서비스 활성화 등 국내 경제상황을 범죄조직이 교묘하게 이용하기 때문이란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또 미끼문자, 악성 앱과 원격제어 앱, 대포통장, 대포폰, 중계기 등 각종 범행도구를 활용하는 등 점점 치밀해지는 범죄 수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연령대별로 보면 기관사칭형의 경우 20대 이하와 30대를 제외하고 40~70대 이상에서 일제히 늘었다. 대출사기형은 전 연령에서 증가세를 나타냈다.
경찰은 특히 A씨의 사례처럼 피해자를 유인하기 위해 이용하는 각종 ‘미끼문자’의 종류나 발송량 등이 급증한 것으로 판단해 △범행도구 단속·차단 △국제공조 강화 △제도 개선 △대국민 홍보 강화 등 크게 네갈래로 대책을 마련해 추진 중이다.
경찰은 우선 휴대전화 번호(010)가 나타나도록 발신번호를 변작해주는 중계기가 범죄에 다수 이용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통신사와의 협업을 확대하는 한편 시도경찰청에 전담 대응팀을 편성했다. 수사 과정에서 범죄에 이용된 전화번호와 카카오톡 계정을 발견하면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관련 기관에 신속히 중지를 요청하고 있다.
또 공공기관·금융기관을 사칭한 미끼문자를 차단하도록 통신사에 관련 자료를 보내 필터링을 요청 중이다. 경찰은 이를 위해 공공기관이나 금융회사 등 주요 피사칭기관을 상대로 실제 국제발신 형태로 업무 목적의 문자를 발송하고 있는지 사실 확인을 요청한 상태다.
중국 등 해외 수사기관과의 국제공조도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범행 과정에서 국내 휴대전화의 로밍서비스 이용할 때도 ‘국외발신’과 같은 식별문구 삽입 필요성을 관계기관에 건의했다.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차단을 회피해 발송된 문자는 수신자에게 범죄임을 알리는 경고 문자를 발송하는 등 모든 방안을 동원해 대응하고 있다.
특히 경찰은 최근 고액의 현금 인출 시 은행 창구에서 피해를 막는 사례가 늘자 피해자에게 수표 발행을 요구해 수거해가는 사례를 막기 위해 이를 금융권에 공유하며 강화된 문진을 요청했다.
범행도구별 전담 수사팀을 지정해 불법 개통·유통조직 소탕을 위한 집중수사도 진행 중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금융권을 상대로 보이스피싱이 의심될 경우 파악을 강화하도록 요청했다”며 “피해 사례, 범행 수법 등 내용을 담은 홍보 콘텐츠를 TV, 유튜브, 포털 사이트, 영화관, 대중교통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홍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이달까지 추진 중이던 특별단속을 10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일부 개그프로그램에서 어눌한 표준어, 연변 사투리 등으로 보이스피싱 사범을 희화화하는 것과 달리 현재의 보이스피싱 조직은 ‘누가 들어도 진짜로 믿을 정도’의 자연스러운 표준어와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토대로 범행을 시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