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검사의 반성문 요구는 타당한가

2024-07-11 13:00:01 게재

반성은 돌이켜(反) 깨닫는(省)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곰곰이 돌이켜 생각하고 깨달음 끝에 쓰는 글이 반성문이다. 그러니 반성문에는 내면의 소리인 양심이 드러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교사가 학생에게 반성문을 쓰도록 하는 것은 학생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제출을 명령한 시말서 또는 경위서가 사죄문 또는 반성문의 의미를 가지면 그 명령은 위법이라고 대법원은 판결했다.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법관들이 타인의 반성문을 가장 많이 받아볼 것 같다. 피고인에게 선고해야 하는 형벌을 정할 때 피고인이 반성하고 있는지 여부를 참작하기 때문이다. 법원의 양형기준표에 따르면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은 형벌을 감경하는 요소다.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면 가벼운 처벌을 할 수 있다.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이 없으면 집행유예를 선고받기 어렵다.

법관은 사법적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사법(司法)이란 구체적인 분쟁이 발생한 경우 독립적 지위를 가진 중립적 기관이 무엇이 법인가를 인식하고 선언함으로써 법질서의 유지와 법적 평화를 기여하는 국가작용이다. 쉽게 말해 유·무죄를 판단하는 일은 법관이 해야 한다. 그래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헌법이 규정한 것이다(제103조).

기소유예 결정시 조건 붙이는 건 옳지 않아

반성문이 필요한 때가 또 있다. 피의자가 기소유예결정을 받고 싶을 때다. 기소유예란 검사가 범죄혐의는 인정하지만 양형조건을 참작해 기소의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기소하지 않는 결정이다. 피의자의 전과 및 전력, 범행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 사회정세와 가벌성 평가의 변화도 참작할 수 있다. 검사의 기소유예결정은 형사소송법 제247조의 ‘기소편의주의’에 근거한다.

검사는 기소유예결정을 할 때 피의자에게 엄중히 주의를 주고 재범의 의사가 없음을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아예 피의자에게 반성문이나 서약서를 받기도 한다. 검사가 기소유예결정을 할 때 피의자에게 상담이나 교육을 받을 것을 조건으로 달기도 한다. 피의자가 마음을 드러내야 하는, 또는 거짓으로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 반성문 쓰기가 교육이나 상담을 받는 것보다 오히려 더 싫을 수 있다.

검사의 불기소결정 중 기소유예 비율은 상당히 높고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는 20~30%에 그쳤지만, 2021년에는 45%, 2022년에는 무려 53%에 이른다. 검사가 모두 기소해야 한다고 하면 법관의 사건처리 부담이 늘어나므로 기소유예결정은 현행 형사절차에서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검사의 기소유예결정은 검찰사법이다. 법관이 해야 하는 사법적 판단을 검사가 대신하는 것이다.

검사는 독립성과 중립성이 보장된 법관이 아니다. 단순히 유예에 그치지 않고 조건을 붙여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문제점을 피하기 위해 소년법의 선도조건부 기소유예는 소년과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요건으로 하는 것이다. 더욱이 가정폭력사건의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는 명확한 법적 근거라도 있지만 저작권교육조건부 기소유예나 성구매자재범방지교육조건부 기소유예는 그렇지도 않다.

피의자는 상담이나 교육 또는 반성문 쓰는 것을 거부하면 기소유예결정을 받을 수 없기에 타협할 뿐이다. 기소유예결정을 받은 피의자는 유죄라는 검사의 판단이 억울할 수 있다. 교육이나 상담은 물론 마음에 없는 반성문을 쓰는 것을 거부하고 법정에서 무죄 확정을 받고 싶을 수 있다. 피의자를 법정에 세우고 싶은 피해자도 기소유예결정은 불만일 수 있다.

검사의 기소유예결정에 대한 통제장치 필요

검사의 기소유예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과 피의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는 재정신청제도로 기소유예결정의 당부에 관한 법관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기소유예결정을 받은 피의자에게는 이런 기회가 없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을 뿐인데 기소유예결정이 헌법재판소에서 취소되는 비율이 20%에 이른다.

기소유예결정을 받은 피의자가 법원에 불복할 수 있는 절차나 검사의 기소유예결정에 대한 통제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윤동호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