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동네병원과 경쟁 탈피하나
일반병상은 최대 15% 감축 시범사업 … 수술단가 대폭 올리고, 당직수가 신설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에 대한 대규모 구조 개편에 나선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환자에 집중하고 동네 병원은 경증환자에 집중하도록 한다. 의료기관 전달체계 개편작업 때마다 제시된 방향이지만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안이 나와 실질적인 개편이 진행될 것으로 주목된다.
11일 정부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9월부터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상급종합병원 구조 개편안을 보면 상급종합병원의 일반병상은 최대 15% 줄이고 중환자 비율을 50% 이상으로 늘린다. 대신 중증수술 수가를 대폭 올리고 당직 수가를 신설하는 등 중증환자 치료에 성과를 올리수록 보상을 더 많이 받도록 한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이 처치 난이도가 높고 생명이 위중한 환자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전공의 사직 이후 비상진료체계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의 중증환자 비율은 45% 정도다. 그 이전에는 39% 수준이었다.
노연홍 의개특위 위원장은 “현재 상급종합병원에서 빈도가 70% 이상인 중증·고난도 수술 행위 중 저보상되고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분석 중”이라며 “저평가 여부, 중증도, 생명과의 직결도 등 우선순위에 맞춰 보상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시범사업을 통해 상급종합병원의 중환자실, 입원료, 중증수술 수가 등 보상을 대폭 강화하고, 상급종합병원이 본래 기능에 적합한 진료에 집중할수록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성과 기반 보상체계’를 도입한다. 응급 진료를 위한 당직 등 의료진 대기에 대해서도 최초로 시범수가(당직수가)를 도입해 보상한다. 진료협력병원을 지정해 상급종합병원과 시너지도 높인다.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이 지역 병의원과 협력해 환자 중증도에 맞춰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도록 구조를 전환한다. 이를 위해 의사 소견과 진료기록이 첨부된 전문적 진료의뢰 절차를 강화하고 중등증(중증과 경증 사이) 이하 환자는 진료협력병원으로 회송한다. 필요한 경우 상급종합병원을 대기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진료협력체계도 강화한다.
또한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의 병상 규모도 적정 수준을 갖추도록 개선할 계획이다. 중증환자 진료에 집중하기 위해 상급종합병원의 병상당 전문의 기준 신설도 검토한다. 상급종합병원의 지역 병상 수급 현황, 현행 병상수, 중증환자 진료실적 등을 고려해 병원별로 시범사업기간 3년 안에 일반병상의 5~15%를 감축하도록 할 계획이다.
설립이 예정된 수도권 신설 병원에 대한 병상 조정은 특위에서 논의하지 않았다. 관련해서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은 “특위에서 큰 틀의 의료전달·이용 체계 개편 방향 논의도 시작했다. 그 안에서 병상 관리에 대해서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범사업 재원은 건강보험 재정이며, 전공의 수련 지원 등은 정부도 지원한다. 재정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다. 제6기 상급종합병원이 지정되는 2027년부터는 본사업을 통해 단계적으로 제도를 개선한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상급종합병원 중증환자 중심 진료 전환은 매우 바람직하다. 병상을 줄이는 작업이 병행돼야 전공의 의존을 줄이면서 진료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의료분쟁 조정’제도도 개선한다. 의료사고에 따른 환자와의 갈등을 줄이고자 병원 내 의료사고 예방 책임을 병원장이 맡는다. ‘환자 대변인’이 신설돼 의료사고 피해자를 돕는다. 사망 등 중대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환자-의료인 간 갈등을 줄이도록 사고 경위 설명, 위로·유감 표시 등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편향성 논란이 있어 온 의료 감정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위원 구성을 무작위 배정으로 바꾼다. 의료인 감정위원 명단도 300명에서 1000명 규모로 대폭 늘려 사망 등 중대사건 ‘교차 감정’을 강화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환자의 알권리 보호를 위해 의료법에 수술·수혈·전신마취 시 의사의 설명의무를 국회에서 신속하게 의료법 개정을 통해 입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환단연은 이번 ‘의료분쟁 조정제도 혁신 검토 방향’에 대한 논의와 발표는 환자와 의료계 모두 의료사고 감정과 조정·중재의 절차 및 결과의 객관성·공정성 등 공신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이루어졌다“면서도 ”이것이 의료계가 요구하고 있고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의 사전 절차가 아니다“고 밝혔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