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독일 배치할 미 장거리미사일에 발끈
“냉전 회귀, 군사적대응”
독일 내부도 우려 목소리
미국과 독일이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을 독일에 배치키로 하자 러시아가 “냉전 회귀”라며 군사적 대응까지 경고하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11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미국과 독일의 미사일 움직임을 예상했다”며 “균형 대응책 마련에 필요한 작업은 관련 국가 기관에서 사전에 시작됐고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긴장하지 않고 감정 없이 이 새로운 게임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우선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과 독일 양국은 나토 정상회의가 진행 중인 10일 공동 성명을 통해 SM-6 함대공미사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개발 중인 극초음속 무기 등을 2026년부터 독일에 단계적으로 배치한다고 밝혔다. SM-6는 사거리가 최장 460㎞, 토마호크는 모델에 따라 1500㎞를 넘는다. 사거리가 500km가 넘는 지상 발사 미사일은 1987년 미국과 옛 소련이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의해 2019년까지 금지돼 있었다.
양국은 성명에서 “이런 첨단 능력(배치)은 나토에 대한 미국의 공약, 유럽의 통합 억제에 대한 미국의 헌신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날 독일과 프랑스·이탈리아·폴란드는 장거리 미사일을 공동 개발하기로 하고 워싱턴DC에서 의향서에 서명했다. 독일은 새로 출범한 영국 정부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원하고 있으며 사거리가 1000㎞를 훌쩍 넘는 미사일 개발이 목표라고 독일 언론이 보도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거리가 약 1600㎞,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약 1100㎞다. 유럽 각국이 현재 자체 보유한 장거리 미사일 사거리는 500㎞ 안팎으로 장거리 미사일 도입은 다분히 러시아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말 미국이 중·단거리 미사일을 유럽과 아시아에 배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러시아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단거리 미사일의 생산을 재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11일 브리핑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관련 질문에 “나토는 그 본질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확인했다”며 “나토는 대결의 시대에 대결 유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동맹”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그 결과 유럽 대륙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며 “우리는 나토의 군사 인프라가 지속적, 그리고 점진적으로 우리 국경을 향해 이동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나토정상회의 결정은 우리나라의 국가 안보에 매우 심각한 위협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나토를 저지하고 나토에 대항하기 위해 사려 깊고 조율된 효과적인 대응을 취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미국 장거리 미사일을 자국에 배치하기로 한 데 대해 “적절한 시기에 중요한 결정”이라며 환영했다. 숄츠 총리는 “러시아의 다양한 무기체계를 고려할 때 우리에게 정밀 미사일이 필요하다고 (올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도 지적했다”며 “억지력의 요소이자 평화에 대한 기여”라고 말했다.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엔 거듭 러시아 국방력을 언급하며 “동맹국과 독일 영토를 보호할 억지력을 어떻게 확보할지 오래 논의해왔다. 핵우산도 있지만 그 외에 스스로 보호할 정밀 타격 옵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 국내에서도 군비경쟁을 부추긴다는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집권 사회민주당(SPD) 소속 랄프 슈테그너 의원은 “세계가 더 안전해지기는커녕 위험의 소용돌이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