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양당 ‘당론법안’ 100개 넘을 수도
당론 거부땐 ‘징계’ 등 강력한 제재
헌법·법률 ‘양심 따른 직무수행’ 제한
“대화 타협 여지 더욱 줄어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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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검사 탄핵 등 예상치 못했던 ‘당론’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앞으로 추가될 법안까지 포함하면 민주당의 ‘당론 법안’은 60개를 훌쩍 넘을 전망이다.
국민의힘 역시 22대 국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5대 분야 31개 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이중 10여개 가까운 법안이 당론으로 이미 채택됐다.
거대양당은 국회 시작 전에 충분한 검토 없이 일단 ‘당론 예비 법안’을 정해놓고 지도부 중심으로 ‘당론화’에 나섰다. 국민의힘도 벌써 10여개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놓고 야당과 맞설 태세를 갖췄다.
당 내부에서는 충분한 법안 검토 없이 당 지도부 주도의 당론화가 법안 부실화뿐만 아니라 국회를 ‘묻지마’ 대치국면에 집어넣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론으로 채택되면 170명의 민주당 의원, 108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각각 한 몸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다. 검사탄핵안에 기권해 강성 지지층들로부터 시달린 민주당 곽상언 의원이 결국 원내부대표 자리를 내놓고 당 징계를 면한 것이나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징계절차에 들어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 지도부는 곽 의원에게 당론의 엄중함과 사안의 심각성을 주지시켰고 곽 의원은 “검사 탄핵소추안의 당론 채택 여부를 확실히 인지하지 못했다”며 “검찰개혁 의지와 당에 대한 충정이 확고하고 변함없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곽 의원은 법조인 출신으로 검사 4명의 탄핵소추안 중 수원지검 박상용 부부장검사의 탄핵 사유에 대해 “근거가 불충분하다”며 기권표를 던졌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 기관일 뿐만 아니라 당원이 아닌 국민을 대표해야 한다는 점에서 거대양당의 ‘당론정치’가 헌법과 법률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 46조 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법 24조에 따른 국회의원의 선서에도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정당이 아닌 국가 이익과 헌법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독립적 행위’를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수 법안에 대한 강력한 ‘당론화’와 이를 어겼을 경우 진행하게 될 징계 절차를 고려하면 거대양당의 법안 당론화는 국회의원의 양심에 따른 직무를 강하게 제한해 헌법과 국회법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거대양당이 당론으로 이미 정해진 법안은 대화와 타협으로 새로운 합의점을 찾을 여지를 막아놓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이는 상임위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입법의 기본골격을 해칠 뿐만 아니라 상임위 심사 기능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또한 강성 지지층에 의해 극단화돼 있는 국회를 더욱 배타적으로 만들어 반목과 대립이 격화될 가능성도 커진다.
민주당 모 중진의원은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 자기의 양심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면서 “정당의 추천으로 선거에 나갔어도 당선된 것은 지역민, 넓게는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것인 만큼 정당이 아닌 국민들의 대표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당론은 국민의 대표로서의 국회의원 개개인의 판단과 의견이 무시되는 것으로 최소화돼야 하고 지키지 않으면 징계하는 강력한 당론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현재는 거대양당이 지도부가 힘으로 끌고 가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