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 채상병 수사’ 외압 사실이면 사법시스템 근간 흔들어
제22대 국회에서 첫번째 특검법이 통과됐다.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채상병 특검법’이다.
채상병이 사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건 발생 초기에 해병대 수사단이 고 채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후 고 채상병 소속 사단장을 포함한 8명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조사결과를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하고,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결재를 받았다.
이첩 전부터 대통령실 외압 의혹
해병대 수사단이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하려고 하자 국방부에서 보류 지시가 내려왔다. 이러한 지시를 부당한 외압이라고 판단한 해병대 수사단장이 사건을 그대로 이첩하자 국방부 검찰단에서 이를 회수해 국방부 조사본부에서 재조사 후 사단장 등을 제외한 2명의 혐의만 경찰에 재이첩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여러 관계자가 국방부장관 차관 법무관리관 등과 통화를 한 사실이 밝혀지며, 대통령실이 이첩보류와 특정인을 혐의에서 제외하는 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러한 난맥상 가운데 국방부는 해병대 수사단장을 보직해임하고, 항명죄로 기소했다.
공군 부사관이었던 고 이예람 중사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군인 등이 사망하거나 사망에 이른 경우 그 원인이 되는 범죄는 군사법원이 아닌 일반법원이 재판관할권을 갖는다. 이에 따라 고 채상병 사망사건도 그 원인이 되는 범죄의 재판관할은 일반법원이 갖고, 군사법경찰관은 고 채상병의 사망사건을 수사할 권한이 없다. 따라서,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면 군사법경찰관은 지체 없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고, 사건을 이첩받은 경찰이 정당한 수사권의 주체로 수사해 혐의 여부를 밝혀야 한다. 그럼에도, 고 채상병 사망사건 처리 과정을 보면,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인 이첩단계에서부터 외압 논란이 불거졌다. 그 과정에 대통령실이 개입돼 있다는 의혹이다. 만약,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사법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공수처 등 수사결과 믿는 국민 많지 않아
이번에 통과된 특검법은 고 채상병 사망 사건, 이와 관련된 대통령실, 국방부, 경북지방경찰청 등에서의 은폐·무마·회유·사건 조작 등 직무 유기·직권남용 등과 이에 관련된 불법행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호주대사 임명·출국·귀국·사임 과정의 불법행위,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 등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을 수사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통과됐던 고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이미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시킨 적이 있다. 윤 대통령과 여당이 거부권 행사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건 관련 사건들에 대해 경찰과 공수처가 수사 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정당한 수사권한이 있음에도 이첩 받은 수사기록을 법적 근거도 없이 다시 군에 넘겨주고, 1년 가까이 미적거리고 있다가 특검법이 다시 통과되자 비공개로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경찰과 제대로 된 소환조사도 못하고 있는 공수처의 수사결과를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참패 후 국민들의 뜻을 겸허히 받들겠다고 했다. 국민들의 70% 가까이는 고 채상병 특검법을 찬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고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다시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국민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