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임대인 53% ‘임대사업자’ 자격유지
자격말소 7명에 불과
세제감면 혜택 누려
전세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떼어먹어 명단이 공개된 ‘악성 임대인’ 절반이 여전히 임대사업자 자격을 유지하며 세제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국회 국토교통위 문진석(더불어민주당·천안시갑)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악성임대인 명단(6월 23일 기준)에 오른 127명 중 67명(53%)이 등록 임대사업자였다. 이들은 임대사업자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악성임대인 34명 중 25명(74%)이, 경기는 48명 중 26명(54%)이 임대사업자로 등록돼 있다.
아직 임대사업자 자격을 유지하는 악성임대인 67명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HUG가 대신 반환한 금액(대위변제액)은 무려 7124억원에 달했다. 1인당 106억원 수준이다.
대위변제 건수는 3298건이다. 3000명이 넘는 전세 피해자가 양산됐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임대사업자로서 취득세·재산세 감면, 종합부동산세 과세표준 합산 배제, 양도소득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다.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은 임대사업자가 보증금 반환을 지연해 임차인 피해가 명백히 발생한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이 임대사업자 등록을 말소하도록 규정(제6조12항)하고 있다.
‘임차인의 피해’ 판단 여부는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는데, 임차보증금 반환 소송에서 승소 판결이 확정됐으나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 성립에도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로 한정돼 있다.
이로 인해 상당수 악성 임대인이 여전히 임대사업자로 등록돼 있는 것이다. 앞선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3년 6개월간 보증금 미반환으로 임대사업자 자격이 말소된 사례는 7명에 불과하다.
악성 임대인으로 명단까지 공개했다면 국토교통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임대사업자 자격 유지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는데, 이런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명단 공개가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진석 의원은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게는 돈을 쓰지 않으려 하면서 악성 임대인들이 받는 세제 혜택은 방치하고 있다”며 “진심으로 전세사기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법령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상습적으로 보증금 채무를 반환하지 않은 임대인의 이름과 나이, 주소, 임차보증금 반환채무, 채무불이행기간 등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 6월 23일 127명이던 공개된 악성 임대인은 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추가 개최로 7월 16일 현재 208명으로 늘었다.
이들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발생한 보증금 반환채무는 총 3606억원, 평균 17억3000만원에 이른다.
법을 소급 적용하지는 않아 악성 임대인 명단 공개의 근거를 담은 개정 주택도시기금법 시행(지난해 9월 29일) 이후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1건 이상 있고, 미반환 전세금 규모가 2억원 이상이어야 명단 공개 대상이 된다.
이에 따라 법 시행 전 발생한 전세보증 사고까지 포함하면 악성 임대인들의 보증금 반환채무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떼어먹은 보증금 규모가 가장 큰 악성 임대인은 강원 원주에 거주하는 손 모(32)씨로, 임차보증금 반환채무가 707억원이다.
최연소 악성 임대인은 인천 미추홀구에 거주하는 23세 이 모씨로 4억6000만원을 돌려주지 않았다. 최고령은 6억2000만원의 보증금 반환 채무가 있는 서울 동대문구 거주 82세 최 모씨다.
김선철 기자 sc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