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사관리사, 업무범위 논란
9월 서울지역 아이돌봄 시범사업
노동계 “불명확해 갈등 소지”
고용부 “업무범위 명확히 할 것”
9월부터 서울지역에서 시범사업으로 일하게 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업무가 불명확해 아이돌봄뿐만 아니라 동거가족을 위한 가사노동까지 떠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16일 성명을 내고 “현재 시범사업 방안에는 여전히 이주 가사노동자의 업무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인권대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서울시와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오는 9월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17일부터 3주간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서비스 이용 가정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필리핀 현지에서 선발된 가사관리사 100명은 내달 입국해 4주간의 교육 후 9월 초부터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안산시병)이 공개한 고용부와 필리핀 이주노동부의 ‘가사관리사 채용 시범사업 실행 가이드라인’을 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직무를 아동이나 임신한 구성원을 위해 목욕·청소·식사 수발 등 “아동의 개인적 니즈에 따라 합당한 가사서비스”로 규정하고 있다. 가사관리사가 아동을 돌보기 위해 특별히 해야 할 업무뿐 아니라 집 밖에 아동을 동반하는 일도 할 수 있다.
이같은 업무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아이와 함께 거주하는 가족을 위해 부수적이고 가벼운(incidental and light) 가사노동도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문제는 가사관리사가 아이돌봄 외에 맡아야 할 가사 업무를 추상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해철 의원은 “가이드에 따르면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아이돌봄 외에 거의 모든 가사서비스를 강요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업무범위에 대한 의견 차이로 상당한 갈등이 예상되는데 상대적 약자인 외국인 노동자 입장을 고려하면 인권침해 및 부당한 노동강요 문제 등이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도 “실행 가이드라인이나 현지 선발공고를 보면 아동 돌봄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노동과 집 밖에 아동을 동반하는 일이 포함돼 있고 동거가족을 위해 가벼운 가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돼 있다”며 “아동돌봄에 필수적인 노동 외에 다른 거의 모든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용주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시킬 가능성이 높고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이를 거부하기 어려워서 갈등이 발생하거나 부당하게 노동이 강요될 수 있다”며 “직무를 상세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도 성명에서 “가사관리사가 아동, 임산부 외에 동거가족에 대해 ‘부차적이며 가벼운’ 가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한 것은 가사관리사 1인에게 가구의 모든 돌봄서비스를 전가할 수 있는 애매한 조항”이라며 “업무범위를 둘러싼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고 돌봄의 전문화 추세에도 역행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는 이주 가사관리사의 노동인권을 크게 훼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필리핀 4개 노총도 지난달 민주노총과 낸 성명에서 “돌봄과 가사에 요구되는 직무능력은 엄연히 다르다”며 “시범사업이 포괄하는 직무를 돌봄만으로 분명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청소 세탁 등 육아와 관련된 가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동거가족에 대한 가사업무를 부수적으로 수행할 수 있으나 이용계약에 사전에 명시된 업무를 수행한다. 이용자가 직접 임의로 업무지시를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비스 제공기관과 이용자 간 서비스 이용계약 작성 시 업무범위의 세부내역을 체크리스트 형태로 구비해 명확히 할 계획”이라며 “이용자를 대상으로 이용계약 외 지시금지 등 준수사항 교육 프로그램도 준비했다”고 밝혔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