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엔저 딜레마에 빠진 일본경제

2024-07-18 13:00:00 게재

지난 12일 달러당 160엔을 넘던 환율이 하루 사이 157엔대로 급락하면서 38년 만에 엔저 시대를 맞은 일본 당국이 엔화가치를 높이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사실 일본 당국은 올해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엔화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620억달러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최근 미 재무부가 일본을 환율관찰 대상국으로 지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달러당 110엔도 되지 않는 엔고 현상에 힘겨워하던 일본으로서는 미국 정부의 눈치까지 봐가며 엔화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낄만하다.

엔저로 대기업 이익 크지만 낙수효과 없어 근로자 실질임금 감소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2021년 이후 일본이 맞이한 엔저 현상은 장기간 침체국면에 빠져 있던 일본경제에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상장사 순익은 3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이며 니케이225로 대표되는 일본 증시 역시 버블경제 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활황세를 이어가고 있다. 엔저 영향으로 일본에는 ‘오버투어리즘’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유입되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일본경제는 엔저로 인해 잃는 것이 더 많다. 우선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수입물가가 오른다는 것을 의미해 내수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 생산의 70% 이상을 화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LNG나 석탄 수입 가격이 부담스럽다. 이는 곧장 전기세 인상과 그로 인한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엔저에 따른 수출 증가로 일본 대기업들이 얻고 있는 이익은 일본경제에 낙수효과를 일으키지 못해 일본 근로자들은 2년 연속으로 실질임금 감소에 고통받고 있다. 현재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본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엔저 문제 해결을 일본 국민들이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엔화가치 하락이 시작된 것은 2015년경으로, 당시 아베 내각은 3개의 화살을 앞세운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발표하며 기준금리 인하 및 양적완화 정책 등 대담한 통화정책을 단행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되찾겠다는 기치 하에 일본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기준금리’도 불사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포함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저금리 기조일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2021년 엔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리면서 엔저현상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미일 양국 사이 기준금리의 갭이 커지면서 엔화를 팔아 달러를 사 시세차익을 노리는 소위 ‘엔 캐리 트레이드’ 현상이 가속화된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해결될 수 있다. 반대로 일본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해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를 줄이는 방법도 고민해 볼 수 있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250%가 넘는 공공부채를 대부분 국채를 발행해 감당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막대한 국채 이자를 추가적으로 지불해야 한다. 그나마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 3월 17년 만에 기준금리를 소폭 인상하며 8년간 이어 온 마이너스 기준금리 시대를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국채 이자 부담 문제를 고려하면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은 언감생심이다.

일본경제 근본적인 체질개선 없이는 엔저 늪 벗어나기 힘들어

물론 일본 기업 6곳 중 하나가 좀비기업으로 분류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준금리인상은 기업 줄도산과 대규모 실업 사태의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엔저현상은 장기 불황의 문제를 단순히 통화, 재정정책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접근해 해결하고자 했던 후유증으로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수반되지 않는 이상 일본경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엔저의 늪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태진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