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일본 비동의 M&A 활성화 정책의 효과

2024-07-19 13:00:06 게재

우리 기업의 밸류업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 가운데, 앞서 기업지배구조의 개혁을 다각도로 추진해왔던 일본정부가 비(非)동의 매수합병(M&A) 활성화 정책에서도 효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원래 일본에서는 경영진의 동의를 받지 못한 M&A는 경영권을 강탈하는 적대적인 행위로 간주되고 주가조작 등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주주 이익의 존중이라는 관점에서는 무능한 경영진을 외부의 압력으로 교체하고 해당 기업의 사업을 분할하고 다른 기업과 결합하는 등의 고도의 구조개혁을 통해 주주 이익을 확대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일본경제의 효율성 생산성 성장성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방향으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업체질 개선 위한 일본정부 행동지침의 효과

이러한 변화의 계기가 된 것은 일본 경제산업성이 2023년 8월에 발표한 ‘기업매수에 관한 행동지침’이다. 이 지침은 기업 체질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는 M&A의 활성화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그동안 경영집행 임원과 사외이사 중심의 경영감독 이사회 임원의 분리, 독립적인 사외이사 중심의 감사위원회, 사장 선임 및 해임위원회 설치 등 기업지배구조의 개혁을 추진했고 그 결과 주가순자산배율(PBR) 1 이상의 기업이 확대됐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을 더욱 강화하는 차원에서 M&A를 활성화하고 저PBR 기업을 퇴출해 주식시장에서 강한 기업을 늘리는 것이 효과적인 수단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정부는 ‘적대적 M&A’라는 기존의 반사회적인 이미지가 강한 개념 대신 ‘비동의 M&A’라는 용어를 보급 시키려고 하고 있다.

일본정부의 비동의 M&A 활성화 지침에서는 세가지 원칙이 제시됐다. 첫째, 기업가치와 주주 공동이익의 확보다. 복수의 매수 제안 중 높은 주가를 제안한 기업이 우선한다. 둘째, 주주 의사의 원칙이다. 회사의 경영지배권에 관해서는 소액주주를 포함한 주주의 합리적인 의사에 의거해야 한다. 셋째, 투명성의 원칙이다. 주주의 판단을 위한 유익한 정보가 적절하고 적극적으로 공개되어야 하며, 기업매수 과정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정부의 지침이 작동하면서 비동의 M&A가 활성화되는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일생명홀딩스는 복리후생 대행서비스 기업인 ‘베네피트·원’에 대한 비동의 M&A를 추진하면서 먼저 동사 경영진과 합병하기로 합의했던 기업과의 주식공개매수(TOB)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일본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베네피트·원은 1만사를 넘는 기업의 종업원에게 레저 건강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제일생명홀딩스가 하고 있는 보험, 헬스케어 관련 서비스를 추가하면서 고객을 늘려 거대한 기업 경제권의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합병 시너지 효과에 대한 판단으로 제일생명홀딩스는 TOB 과정에서 경쟁상대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 소액주주 등의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비동의 M&A의 활성화로 일본기업 경영진도 언제 매수공세가 들어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갖고 주주 이익 중시, 과도한 내부유보 등 자본의 낭비 자제, 중장기적 투자 전략 마련, 인적자본투자, 여성 이사 확대 등에 주력하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행동주의 투자가를 기피해 왔던 일본 대기업들도 이들과의 대화에 보다 진지한 자세를 보이는 변화도 나타났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자본시장 발전시킬 필요 있어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기업을 보다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고 경영권도 유능한 주체로 원활하게 교체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자본시장 경영권시장이 발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개혁을 통해 주주가치 향상을 배려한 장기적 성장지향 경영 강화가 우리 경제의 성장한계 상황 극복과 연금기금의 투자 수익 확대를 통한 고령화 문제의 완화에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