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검찰 조사로 방어선 구축…특검 불씨 남아
“조사필요” 여당대표 주자들에 응답 … 전당대회 사흘 전 ‘명분 쌓기’
‘봐주기·패싱’ 논란에 의미퇴색 … 임성근 구명·전대개입 의혹 신규악재
김건희 여사가 20일 현직 대통령 배우자로는 처음으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김 여사가 여당 전당대회를 불과 사흘 앞두고 전격적으로 대면조사에 응한 것은 차기 당 지도부를 의식한 명분쌓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조사 방식을 둘러싼 논란, 김 여사가 관련된 새로운 의혹의 잇따른 돌출로 악재는 더 쌓여가는 모습이다.
◆미루기 힘들었던 소환조사 = 김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및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20일 서울 중앙지검 관할 내 정부 보안청사를 방문, 약 12시간에 걸쳐 비공개로 대면조사를 받았다.
조사 장소는 김 여사 측이 경호처를 통해 물색한 후 검찰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호와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서울 종로구 창성동의 대통령 경호처 부속 청사로 정했다는 후문이다.
김 여사는 도이치모터스 의혹과 관련해서는 사건 관계자들과 공모한 적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하고 명품가방과 관련해서는 직무 관련성이 없고 직원에게 반환을 지시했으나 직원의 실수로 돌려주지 못한 채 보관 중이라는 입장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 측 최지우 변호사는 “김 여사는 성실히 조사에 임해 사실 그대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대통령실은 검찰의 김 여사 소환에 부정적인 기류였다. 현직 대통령의 배우자가 포토라인에 선 적이 없는 만큼 ‘망신주기’라는 인식이다.
그럼에도 김 여사가 이번 조사에 응한 것은 시기적인 요인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김 여사가 각 사건으로 고발된지 적지 않은 시간(도이치모터스 4년여, 명품가방 7개월여)이 흘렀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특검을 거부하는 명분 중 하나로 삼고 있는 ‘선 수사기관 수사’가 국민을 납득시킬 만한 형태로 끝나려면 여사 소환은 피할 수 없는 절차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대면조사 불응이 길어지면 특검 명분에 힘을 실어주는 격이 될 수 있었던 것.
여기에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가 23일로 임박했다는 사실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가 검찰조사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 당대표 주자들의 일치된 목소리인 만큼 여기에 화답해야 차기 지도부에 야당의 특검공세를 방어할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17일 나경원·원희룡·윤상현·한동훈 당대표 후보는 CBS라디오 토론회에서 ‘김 여사가 명품백 반환 지시를 했지만 행정관이 깜빡했다는 진술이 나왔는데 여전히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조사가 어떤 식으로든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모두 ‘○(동의)’ 팻말을 들었다.
◆“수사 끝나도 특검 여론 달래기 어려울 것” = 그러나 김 여사의 이번 검찰조사에 얼마나 여론이 반응할지는 미지수다.
조사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조사를 제3의 장소에서 실시한 점, 조사 사실을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점은 공정성 시비로 이어졌다.
이 총장은 22일 오전 “우리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말씀드렸으나 대통령 부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국민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며 대국민사과를 하기도 했다.
민주당은 21일 이번 조사를 “약속대련”이라고 깎아내리며 “유명 배우도 야당 대표도 전직 대통령도 수 차례 섰던 검찰청 포토라인을 김 여사 혼자만 유유히 비켜 갔다”고 꼬집었다. 탄핵정국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섰던 사실이 다시 회자되면서 ‘특혜’가 아니라는 대통령실 입장도 설득력이 약해졌다.
총선 후 김 여사를 매개로 제기된 추가 의혹들도 악재다.
채 상병 순직사건과 관련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활동에 김 여사가 관련돼 있다는 의혹이 일자 민주당은 이를 도이치모터스 의혹과 연결지으려는 모습이다. 김 여사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게 보낸 문자를 기점으로 여사의 전당대회 개입 의혹 및 이른바 ‘댓글부대’ 의혹이 연달아 터져나온 상황이다.
여권 관계자는 “악재를 덜기 위해 검찰 조사에 응했지만 거꾸로 상황은 악화돼가고 있다”며 “수사기관 수사가 대통령 말대로 먼저 끝나더라도 특검 여론을 달래긴 힘들 것 같다”고 봤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