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인공지능(AI) 시대의 한국 반도체

2024-07-23 13:00:31 게재

2022년 12월 챗GPT의 등장은 전세계에 인공지능(AI) 돌풍을 몰고 왔다. 사실 AI는 갑자기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큼 새롭거나 신기한 기술은 아니다. 그 개념은 이미 1950년대에 등장했고 연구자들은 꾸준히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다.

2001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A.I.’는 당시 어른들의 동화로 평가되었지만 지금 로봇과 AI 기술 개발 속도를 보면 머지않은 미래에 충분히 현실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AI 기술이 발달하고 있는 배경에는 반도체가 있다.

반도체 없이는 AI도 없다

AI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연산 작업이 필요한데 이를 수행하는 것이 반도체이기 때문에 반도체가 없이는 AI도 없다. 2001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는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르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으나 AI가 당장 우리 일상에서 활용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10년 후인 2011년 미국의 TV쇼에 등장한 AI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이 퀴즈대결에서 우승하면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은 한번 더 전세계를 충격에 빠지게 했다.

이렇게 인간을 이기는 AI의 등장이 가능했던 것은 반도체 기술이 그만큼 발달했기 때문이다. 미국 TV쇼에 등장한 IBM의 왓슨은 당시 세계에 몇대 존재하지 않는 슈퍼컴퓨터로 사용된 메모리 용량은 당시로는 막대한 규모인 16테라 바이트였다. 그리고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이기기 위해 1202개의 중앙처리장치(CPU), 176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 103만개의 메모리 반도체와 100여명의 과학자 등 엄청난 물적 인적자원이 동원됐고 시간당 170㎾의 막대한 전력을 소모했다.

왓슨과 알파고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AI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반도체가 필요했기 때문에 AI가 일반인들이 활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자율주행 자동차를 비롯해 AI 기능이 탑재된 가전, 자동 번역 프로그램 등이 등장하면서 AI 기술이 우리의 일상에 전파되기 시작하였으나 특정 기능만을 수행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챗GPT의 등장으로 인해 AI에 대한 인식이 대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챗GPT 등장 이후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반도체 기업이 있다. 바로 엔비디아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카드 전문 생산기업이었는데 이 GPU가 현재 AI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연산에 최적화되어 있고 생태계도 잘 조성한 덕분에 현재 AI 가속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우리는 일반적으로 AI 반도체라고 부른다. 엔비디아가 만드는 AI 가속기 안에는 GPU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이 만드는 고대역 메모리반도체(HBM)도 사용되고 있다.

‘한국 기업 도태론’은 기우

최근 엔비디아가 주목받으면서 AI 반도체는 엔비디아가 모두 장악했다는 오해와 함께 한국 기업들은 AI 반도체 시장에서 도태되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어쩌면 지금 당장은 옳은 말이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AI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보관하고 처리해야 한다. 이것은 분명한 메모리반도체의 영역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이 AI 반도체 시장에서 도태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AI 기술 구현을 위한 반도체가 계속 변화했듯이 새로운 AI 기술에는 다른 반도체가 중심이 될 수도 있으므로 엔비디아의 영광도 영원할 수는 없다. 우리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엔비디아와는 또 다른 역사를 만드는 기업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