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누리집 담장 쌓는 전국 광역지자체
대구시가 처음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된 대표사업 중 하나가 담장허물기다. 대구시의 담장허물기 사업은 1996년 10월 서구청 담장을 뜯어내면서 시작됐다. 문희갑 전 시장이 관주도로 보급했다면 조해녕 전 시장은 시민단체 회장을 맡아 시민운동으로 확산시켰다.
관공서 문턱을 낮춰 시민과 친근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돼 이웃끼리 담장을 허물어 터놓고 지내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마련하면서 도심의 녹지공간을 확보하자는 시민운동으로 확대 발전된 것이다.
담장허물기 시민운동은 국채보상운동과 2·28민주운동에 이은 자랑스러운 대구의 시민운동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서울·부산을 거쳐 전국으로 확산됐다. 2002년 법문사 발행 고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담장허물기 사업도 착수 초기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도 관공서 담장허물기는 주택과 아파트 병원 등 공공시설로 퍼져나갔고 전국 지자체들도 앞다퉈 도입했다. 긍정적 효과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담장을 허물고 나니 단독주택의 도둑도 사라졌다. 이웃이 안전망 역할을 했다.
그런데 최근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개방성의 상징으로 불리는 인터넷의 담장을 쌓고 있다. 지난 3월 경기도 김포시에서 악성민원에 시달리던 30대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악성민원으로부터 공무원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공무원의 이름이 가려졌다. 행정안전부 권고가 최선의 대책인 양 따라 한 것이다.
서울시 광주시 세종특별자치시 등은 부서장급 이상 간부의 이름만 공개하고 직원들의 이름을 가렸다. 부산 대전 인천 울산 등은 모두 비공개했다. 8개 특광역시 중에서는 대구시만 유일하게 전직원의 이름을 공개하고 있다. 담장허물기사업의 원조답게 인터넷상의 담장도 쌓지 않았다.
9개 광역도 중에서는 경북도를 비롯 전남 경남 충남 등 4곳이 비공개했다. 경기는 부서장급 이상 간부는 공개했고 직원은 성씨만 공개했다. 전북은 과장급 이상만 노출했다. 전직원의 이름을 모두 공개한 곳은 충북 강원 제주 등 3곳이었다.
물론 민원인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공무원들의 보호도 무시돼선 안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정보가 공개되는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공무원의 이름을 숨긴다고 해서 악성민원이 근절되고 공무원의 신상이 보호될까?
악성민원인 때문에 정당한 민원인의 불편이 가중되고 행정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역효과는 왜 검토하지 않았는지, 또 얼마나 많은 공직자들이 악성민원인 때문에 신변에 위험을 느끼면서 봉직하는지도 궁금하다. 인터넷 세상으로 누리게 된 행정의 편의성 투명성 책임성이 무시되는 건 득보다 실이 큰 것 같아 유감이다. 민원대응은 공직자의 주요 업무이기 때문이다.
최세호 자치행정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