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사회적 연결

이웃의 삶에 귀 기울이는 시간…‘관계의 확장’으로

2024-07-25 13:00:02 게재

파주 교하도서관, 11년째 ‘동네 사람 프로그램’ 운영 … “도서관 활동에 지역 주민·정책 결정권자 지지 보내”

파주 교하도서관은 11년째 ‘동네 사람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해마다 6회 정도 비정기적으로 지역 주민을 강사로 초대해 그들의 다양한 삶을 공유한다. 청중들은 이웃들이 무엇을 하며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지 이해하고 정보를 얻는다. 교하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을 발굴해 파주의 여러 작은도서관에 독서문화프로그램 강사로 연결해주는 행사인 ‘파주시 3, 4권역 작은도서관 지역강사연계사업 프로그램설명회’(지역강사박람회)도 연다. 13일 오후에 방문한 파주 교하도서관 1층 로비에는 ‘동네 사람 프로그램’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용자들은 오며 가며 어떤 내용의 전시인지 살펴보며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서관 인근 지역 주민이 강사로 나서는 프로그램이기에 보다 더 관심을 갖는 듯 보였다.

이날 ‘동네 사람 프로그램’ 담당자 전은지 사서와 ‘지역강사박람회’ 담당자 김선정 사서, 그리고 ‘동네 사람 프로그램’과 ‘지역강사박람회’에 참여한 주민들을 만나 각 프로그램의 의미와 얽힌 사연에 대해 들었다.

2월 29일 파주 교하도서관 1층 로비에서 지역강사박람회가 열렸다. 사진 교하도서관 제공

◆“이웃과 만남 주선하는 공동체의 장” = 교하도서관은 2000년대 초반 교하신도시가 개발되면서 2008년 문을 열었다. 신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살아가야 하므로 이웃과의 소통이 쉽지 않다. 그만큼 지역에 관심과 애정을 갖기도 어렵다. 이런 가운데 교하도서관은 ‘지역연계’를 담당하는 사서를 두고 지역의 여러 활동에 협업해왔다. ‘동네 사람 프로그램’도 그가 담당한다.

‘동네 사람 프로그램’의 시작은 ‘사람책 도서관’이다. ‘사람책 도서관’은 이용자들이 책을 읽으며 정보를 얻는 것처럼 사람을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그 사람의 삶과 가치관, 직업과 관련된 정보 등을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교하도서관은 해외 및 국내 여러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사람책 도서관’의 사람을 ‘동네 사람’으로 정의해 지역 주민들끼리 서로 대화하고 공감하며 연결되는 자리로 만들어냈다. 1인 출판사 대표, 한의사, 도예공방 작가, 아나운서, 창업을 한 청년, 한국어 강사 등 다양한 색깔을 지닌 ‘동네 사람’들이 이용자들과 소통했다. 강의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도예공방 작가가 강사로 나설 땐 강습이 열리기도 한다.

강의를 하는 ‘동네 사람’ 입장에선 도서관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의 삶과 가치관, 활동 등을 나누는 자리가 된다. 청중들이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것에서 큰 의미를 얻는다. 청중들 입장에선 이웃들의 얘기와 평소 관심이 있던 직업 혹은 활동에 대한 얘기를 듣고 강습에 참여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지난해엔 10주년을 맞아 ‘자연에 가까운 사람들’ ‘말하고 쓰는 사람들’ ‘예술이 일상인 사람들’ 등 3가지 주제로 12차례 강의를 열었다. ‘이웃과 만나는 도서관’이라는 책도 펴냈다.

전 사서는 “교하신도시가 개발된 이후 인접한 운정신도시가 연달아 개발되면서 교하도서관은 신도시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게 됐다”면서 “공공의 장소성과 정보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이웃과의 만남을 주선하며 공동체의 장 역할을 하고자 ‘동네 사람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대형 프로그램에 비해 예산 등은 적지만 은은하게 지역 주민들의 관계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지역 주민들을 위해 공공도서관이 해야 할 역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사서가 인근 가게 방문하며 소통 = ‘동네 사람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강의나 강습을 진행할 ‘동네 사람’을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교하도서관의 평소 활동이 큰 도움이 됐다. 교하도서관은 소식지를 매달 발간하며 인근 가게 등에 비치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한다. 사서들이 소식지를 들고 일일이 가게들을 방문하며 어떤 가게들이 새로 문을 열었고 어떤 가게는 요즘 장사가 잘 되는지 등을 파악한다. 그렇게 도서관 인근을 다니다 보면 지역의 소식들을 듣게 되고 자연스럽게 ‘동네 사람’을 발굴하게 된다.

2022년에 ‘동네 사람’으로 강의를 한 채식 빵과 식사를 제공하는 카페 ‘베지앙’의 김아윤 대표도 그렇게 발굴했다. 김 대표는 막 파주에서 창업을 한 20대 청년이다. 교하도서관은 환경에 관심을 갖고 채식주의자를 위한 빵집을 운영하는 청년 창업가에 주목했다.

김 대표는 “이 동네에서 자라서 동네에 애정이 많고 교하도서관은 어릴 때 다녀서 추억이 깃든 익숙한 장소였는데 강의를 하게 돼 굉장히 뜻깊었다”면서 “도서관이 동네 사람들을 초청해 강의를 하는 문화를 보면서 지역 사회의 표본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때론 먼저 교하도서관을 찾는 지역 주민도 있다. 표경희 느루공방 대표가 그 중 하나다. 표 대표는 수강생들과 작업을 하다 단체전시를 할 곳을 찾던 중 교하도서관에 대관 문의를 했다. 이후, ‘동네 사람 프로그램’과 연결돼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습을 하고 단체전시도 열었다.

표 대표는 “도서관이라고 하면 책만 읽고 조용한 곳인 줄 알았고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는 곳들도 있는데 교하도서관은 전시 문의에 흔쾌히 응하는 등 굉장히 열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교하도서관에서 처음 단체를 대상으로 강습을 하게 됐고 이후 도서관이 여는 반짝시장(플리마켓)에 참여하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2022년 표경희 느루공방 대표가 ‘동네 사람 프로그램’에서 강습을 진행 중이다. 사진 교하도서관 제공

◆작은도서관에 지역 주민을 강사로 = 교하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의 재능을 발굴해 파주의 여러 작은도서관에 독서문화프로그램 강사로 연결해주는 ‘지역강사박람회’도 2023년부터 해마다 1차례씩 열고 있다. ‘지역강사박람회’는 작은도서관 지역강사 연계 독서문화프로그램 ‘우리동네 작은도서관에서 만나요’를 운영할 강사들을 작은도서관에 연결해주는 행사다.

파주에는 작은도서관이 84개관이 있으며 협력사서 4명이 작은도서관들을 지원한다. 교하도서관은 협력사서 2명과 함께 이중 52개관을 맡았다. 작은도서관의 경우 법적으로 사서를 두지 않아도 되는 도서관이기 때문에 협력사서를 통해 지원하고 있다. ‘지역강사박람회’도 협력사서가 담당한다.

2월 열린 ‘지역강사박람회’에서는 작은도서관에서 강사로 활동하기를 희망하는 지역 주민들이 교하도서관 로비 1층에 자신들의 부스를 차리고 작은도서관 및 공공도서관 사서들과 만났다.

분야는 △공예 △작가 △예술활동 △책놀이 △책읽기·토론·글쓰기·인문 △원예·생태·환경 △신체활동 △과학·미디어 △다문화 등으로 다양했다. 이들 중에는 강사로 처음 서고자 하는 이들도 있고 기존에 강사로 활동하던 이들도 있다.

이들은 강의 기획안과 함께 직접 집필한 책 등 본인의 강의를 홍보할 수 있는 내용으로 부스를 채웠다. 사서들은 자신의 도서관과 적합한 강의를 할 수 있는 강사가 있는지 부스를 둘러보고 강사들과 직접 대화할 수 있었다.

홍혁진씨는 ‘지역강사박람회’에 참여한 지역 주민 중 1명이다. 그는 독립출판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홍씨는 “일을 하면 비슷한 연령대나 업종 등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데 강사로 활동을 하면서 청소년이나 어르신 등 평소에 만나기 쉽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돼 의미가 있었다”면서 “도서관 우수회원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이런 경험을 하게 돼 도서관에 빚이 많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임봉성 교하도서관 관장은 “지역 주민이 ‘동네 사람’으로 강의를 하고 ‘지역강사박람회’에도 참여하는 등 도서관이 시민을 성장시키고 성장한 시민들이 다시 도서관에서 정보서비스를 하는 식으로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도서관을 운영한다”면서 “도서관의 이런 활동에 지역 주민들이 지지를 많이 보내고 정책 결정권자들도 도서관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등 파주 도서관들은 상대적으로 흔들림 없이 탄탄하게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파주=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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