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독주·거부권’ 악순환 …‘채상병 특검법’ 두 번째 재표결
‘방송 4법’ 강행에 여당 무제한토론, 19개째 거부권 예고
‘야당 첫 과반’ 민주당 독주에 윤 대통령, 역대 최다 거부권
‘두 달 간의 사회적 대타협’ 의장 중재안에 정부·여당 거부
우 의장 “정부여당, 타협할 용기만 있다면 빗장 열 수 있어”
악순환의 고리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수적 우세를 앞세워 입법독주에 나서면 여당은 퇴장으로 맞선 다음 본회의에서 무제한 토론으로 저항했다. 그러고는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재의결, 부결의 순서로 이어졌다.
22대 국회 들어서는 민주당이 채 상병 특검법 ‘재발의’로 악순환을 시작했고 같은 경로를 거쳐 첫 재의결을 앞두고 있다. 방송 4법은 ‘무제한 토론’ 단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조만간 통과, 거부권, 재의결로 이어질 전망이다.
25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본회의에서는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을 먼저 처리하고 방송4법은 필리버스터가 예정돼 있어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법안 상정 순서에 대해 민주당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야당이 192석을 보유하고 있지만 여당의 결속력이 강해 여당에서의 이탈표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무기명 투표라는 점에서 이탈 가능성을 기대하는 시각도 있지만 여당내에서 이탈 기류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신임 한동훈 대표도 재표결 대상인 채 상병 특검법 내용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에서도 부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채상병 특검법은 한 대통령 임기 중 두 차례나 재의결까지 가서 폐기되는 최초 법안이 될 전망이다. 이 법안은 지난 21대에 끝나기 직전인 5월 28일에 재투표에 부쳐져 재석 의원 294명 가운데 찬성 179명, 반대 111명, 무효 4명으로 부결됐다. 거대양당이 찬성과 반대를 당론으로 정해놓고 힘겨루기를 한 결과다.
그 뒤를 방송 4법이 뒤따를 채비를 마쳤다. 이 법안들은 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상임위를 넘어섰고 본회의에 이날 상정될 예정이다. 여당은 파리올림픽 개막식 참석 등 해외 출장을 취소하고 대기령을 내려놨다. 이날부터 한 개의 법안 당 24시간씩 필리버스터를 열 계획이다. 24시간이 지나면 민주당이 5분의 3의 찬성으로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것으로 보인다. 4박5일간의 대장정이 끝나면 여당은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고 윤 대통령은 이를 수용한 후 민주당은 재의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의 상임위 통과 강행→여당의 반발 퇴장→민주당의 본회의 상정 요구→민주당 소속이었던 국회의장의 상정 결심→상정→여당의 무제한 토론→통과→여당의 거부권 행사 요구→대통령 거부권 행사→재의결 상정→부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무한 반복할 태세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결국 폐기된 법안들을 당론으로 재발의하기로 결의했고 순차적으로 이행 중이다. 전세사기 특별법, 노란봉투법, 간호법, 양곡관리법 등이 줄줄이 ‘악순환 열차’에 올라탔거나 올라탈 기세다.
윤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최대 거부권 행사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현재까지 집권 2년 여 동안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모두 15개다.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방송 3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대장동 50억클럽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채상병특검법(2회),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예우관련법, 농어업회의소법, 지속가능한 한우산업 지원법 등이다. 여기에 방송 4법과 다음달에 통과될 전세사기법, 25만원 민생 지원법, 노란봉투법 등을 더하면 조만간 20개를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 중 최다 횟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4개(대통령 권한대행이 별도 2개 행사), 박근혜 전 대통령은 2개, 이명박 전 대통령은 1개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문제는 거대 양당이 강 대 강 대치국면에서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묻지마 거부권’이 국민저항을 강하게 만들어 ‘탄핵’으로 이끌 지름길로 보고 있다. 민주당 모 의원은 “입법을 밀어붙여 거부권이 행사되고 결국 폐기되더라도 언제까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계속 행사할 수 있겠느냐”며 “묻지마 거부권에 대한 국민 저항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입법독주가 쌓여갈수록 국민 피로감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날 윤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맞서 똘똘 뭉치자”고 했다. 이에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5월16일 초선 의원 당선자들에게 “국회에서 여당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적극 활용하라”고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첫 중재 시도는 실패했다. 방송 4법에 대한 민주당의 독주와 정부의 공영방송 선임 강행을 멈추고 ‘2달간의 사회 대타협’을 시도하자는 제안을 정부와 여당이 걷어찼다.
우 의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의장 중재안에 여당은 인사권을 구실로 정부에, 정부는 여야합의를 구실로 여당에 책임을 넘겼다”며 “갈등을 방치하고 방조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지금 빗장은 정부와 여당이 열 수 있다”며 “대화와 타협할 용기만 있다면 소모적인 악순환을 멈추고 새로운 길,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길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