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일근무제 도입 확산

주4일제, 국가·지역·산업차원 다양하게 실험

2024-08-02 13:00:02 게재

산재감소, 일자리 창출, 일·생활 균형에 생산성도 향상 … 아이슬란드 스페인 정부는 재정 투입

“아이슬란드의 실험은 엄청난(overwhelming) 성공을 거뒀다.”

2021년 7월 영국 BBC 방송의 북유럽 아이슬란드의 ‘주4일제 실험’에 대한 평가다. 아이슬란드 주4일제 실험은 유럽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본격적인 논의를 촉발시켰다.

아이슬란드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 경제활동인구 1%인 2500여명을 대상으로 연간 329억원을 투입해 주4일제를 시행했다. 인구 36만명의 아이슬란드는 칠레 멕시코 일본과 같은 노동집약적인 국가다. 2018년 아이슬란드 정규직 노동자의 1인당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44.4시간으로 스칸디나비아 노르딕 5개 국가 중 장시간 노동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주4일제 실험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국민적 공감대에서 시작됐다. 유치원 교사, 회사원, 사회복지사, 병원 종사자 등 100여개의 다양한 직군의 실험 참가자들은 임금삭감 없이 주4일제를 시행해 노동시간이 기존 주 40시간에서 36시간(일부 32시간)으로 줄었다. 아이슬란드 전체 노동인구 가운데 86%가 기존과 동일한 임금을 받으면서 더 적은 시간 일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주 4일 노동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토론회 발제에서 “주4일제를 시행한 해외 사례에서 산업재해 감소, 더 나은 일자리 창출, 일과 삶 균형, 퇴직 감소 등의 결과가 다수였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김주영·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국제사무금융서비스노조 한국협의회(UNI-KLC)가 주관했다.

주4일제 쟁취 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6월 12일 서울 종로구에서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적정인력 기준 제도화 및 주4일제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김종진 소장은 아이슬란드 사례에 대해 “노동시간이 줄자 스트레스로 인한 번아웃(소진) 등 신체적 정신적 고통이 해소되고 일과 삶의 균형이 개선됐다”면서 “이후 전체 노동인구의 86%가 기존과 같은 임금을 받으면서 더 적은 시간을 근무할 수 있게 됐고 실험이 진행된 기간 노동생산성 연성장률은 1.7%에서 3.8%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에 따르면 주4일제를 도입하거나 시범운영 중인 나라는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핀란드 일본 아랍에미리트연합 등으로 늘고 있다. 지역과 업종, 사업장 등 방식도 나라마다 다르다.

스페인도 주4일 근무제를 2021년부터 시범 운영했다. 사업 참여 노동자의 급여를 10~20% 삭감하면서 3년 동안 주4일 32시간 근무제를 실시했다. 스페인 정부는 사업비 5000만유로(750억원)를 책정했다.

영국 자치도시인 사우스케임브리지셔 디스트릿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15개월 간 공공부문에서 주4일제를 시행했다. 그 결과 노동 및 채용 관련 평가지표 24개 중 22개가 유지 개선됐다. 이직률은 39% 줄었고 채용공고 지원자 수는 53% 늘었다. 폐기물 차량 운전 등 기피 업무에도 134명을 신규 채용할 수 있었다. 직원의 업무 몰입도, 정신·신체건강, 동기부여 등도 개선됐다.

스페인 발렌시아에서는 월요일을 공휴일 지정하는 방식으로 주4일제를 실시해 일·생활 균형 등 노동과 채용 지표 개선은 물론 출퇴근 교통량과 소음 감축, 온실가스 배출량도 줄었다.

프랑스 유통회사인 ‘엘데엘쎄(LDLC)’의 주4일제 2년 실험결과 산재나 병가, 결근이 절반으로 줄고 이직률도 2019년 11%에서 2022년 2%로 떨어졌다. 오히려 매출액은 36% 증가했다.

●한국도 20대 대통령선거 주요 의제로 부상 = 우리나라도 주4일제가 20대 대통령 선거 주요 의제였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87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742시간)보다 106시간 길다. 유럽연합(EU) 평균은 1571시간이다.

김 소장은 “주4일제와 같은 ‘시간의 정치’를 하지 않으면 한국의 노동시간은 1500시간대로는 갈 수 없다”면서 “최저임금위원회처럼 국가노동시간위원회를 만들어 OECD 평균 이하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정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별 교섭이나 개별 사업장 교섭 등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벌여 제도 수용성을 높이는 전략도 중요하다”면서 “현실적으로 하루 9시간, 주 4일 일하는 주 36시간제를 1단계 목표로 삼고 그 다음에 32시간으로 가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저출산 문제 주요 해결책 = 토론회에 참여한 금융 보건 언론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저출생 문제의 주요 해결책으로 주4일제 등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형선 금융노조 위원장은 “최근 각 은행별 자녀 수 동향을 봤더니 10년 사이 평균 60~70% 직원 자녀 숫자가 급감했다”며 “이는 출산율 문제를 단순히 경제적 관점으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출생은 국민의 삶의 양식을 바꿔줘야 해결될 수 있다”며 “이와 관련해 주4일제가 우리 사회에 주는 역할이 어떤 것인지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호걸 금융노조 사무총장은 “양육시간 부담의 완화로 저출생 문제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한다”며 “주4일제를 시범 도입한 국내외 사례를 보면 남성의 가사노동과 육아 참여 등 긍정적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복준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병원 노동환경에 켜진 경고등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며 “20~30대 젊은이들을 희생시켜 산업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하기 싫은 주4일제가 아니라 사회공동체 유지를 위한 주4일제로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기범 언론노조 조직쟁의실장도 “노동시간 축소가 저널리즘의 깊이, 정확 신속, 공정성 확보에 역행돼서는 안된다”며 “미디어 공공성을 지원할 정책과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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