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병원 주4일제 실험, ‘퇴직율 감소, 친절도 증가’
노사자치 성과
다른 병원·직종으로 확대
정부 차원 지원사업 필요
불규칙한 교대근무, 야간근무,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세브란스병원 간호사들이 ‘주4일 근무제’ 시범사업으로 퇴사율이 줄고 간호서비스 질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노총 세브란스병원노조는 7월 2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세브란스병원 주4일제 시범 사업 1년의 결과와 함의 토론회’를 열었다.
세브란스병원 노사는 2022년 8월 노사는 주4일제 시범사업이 포함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위해 추가인력을 채용하고 시범사업 참여자의 임금을 10% 삭감했다. 단체협약에 따라 2023년 1월부터 신촌 세브란스병원 2개 병동, 강남 세브란스병원 1개 병동에서 주4일제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올해 시범사업은 신촌 세브란스병원 3개 병동, 강남 세브란스병원 2개 병동으로 확대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공개된 주4일제 시범사업 조사결과에 따르면 시범사업에 참여한 세브란스병원 병동 3곳의 간호사 퇴사율은 감소하고 친절 건수는 증가했다.
서울 신촌 171병동의 퇴사율은 시범사업 시행 전인 2022년 3.6%에서 시행 이후인 2023년 0%로, 신촌 172병동은 9.1%에서 2.9%로, 강남 83병동은 27.0%에서 18.2%로 각각 3.6~8.8%p 줄었다. ‘주5일제’로 운영된 다른 병동 2곳 퇴사율은 전년도보다 늘거나 비슷했다.
번아웃(육체적 정신적 탈진) 비율도 점검했다. 2022년 ‘나는 육체적으로 지쳐있다’는 응답이 74.7%에서 2023년엔 68.8%로, ‘정신적으로 지쳐 있다’는 응답도 70.3%에서 60.8%로 줄었다.
주4일제를 시행한 병동 간호사들의 행복도와 일·생활 균형 만족도도 올랐다. 행복도는 2022년 5.3점(10점 만점)에서 지난해 6.2점으로, 일·생활 균형 만족도는 3.7점에서 5.5점으로 높아졌다.
이 같은 결과는 1주 노동시간이 평균 9시간 40분 줄어들면서 일·생활 균형이 확보된 영향으로 분석됐다.
이는 간호사들이 환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질 개선으로 이어졌다. 주4일제를 시행한 신촌 171병동의 경우 지난해 환자들로부터 접수한 친절 건수는 132건으로 2022년(88건)보다 1.5배, 신촌 172병동은 111건으로 전년(42건)보다 2.6배 늘었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소서정 간호사는 “주4일제를 통해 가정과 육아에 더 충실할 수 있고 여가생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며 “직업 만족도, 삶의 만족도가 높아져 환자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권미경 세브란스병원노조 위원장은 “병원 내에서의 시범사업 확대는 물론 올해 단체교섭에서는 간호사 외 직군에 대한 시범사업 확대도 요구하고 있다”며 “노조의 궁극적인 목표는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를 시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효과도 커,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 논의해야 = 시범사업 연구를 총괄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주4일제 시행으로 이직률이 낮아지고 간호서비스의 질이 개선됐고 잦은 이직에 따라 기업의 신규 채용, 교육훈련비와 국가의 실업급여, 근로자 건강개선에 따른 건강보험 지출 감소를 고려하면 주4일제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효과가 크다”며 “주4일제가 기업에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도 확실하기 때문에 임금삭감 없는 주4일제 도입 논의도 시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범정부 차원의 노동시간 단축 계획과 지원정책, 사회적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이중구조가 심각해 대기업 유노조 사업장만 주4일제가 도입되고 중소기업 무노조 사업장에는 도입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산별 협약 등을 통해 차별 없이 도입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최근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시행령 등에 보건의료인력 적정 노동시간 확보와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며 “이에 따라 사업의 지원 방향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 교수는 “사용자가 주도한 실험과 노사가 합의로 추진하는 이례적인 실험 등이 있지만 정부의 시범사업 확대 같은 노력이 결국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