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편집기술, 임상단계로 빠르게 발전

2024-08-05 13:00:02 게재

‘크리스퍼-캐스9’ ‘염기편집’ ‘프라임편집’ ‘브릿지RNA’ 등 … 기술적·경제적 장애물은 여전

60대 남성 패트릭 도허티는 2020년 가을 아일랜드 도네갈 카운티의 언덕을 오갈 때마다 이상하게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진단결과는 아밀로이드증, 즉 단백질인 아밀로이드가 장기와 조직에 쌓이는 희귀 유전병이었다. 예후는 더욱 나빠 사망에 이를 때까지 수년간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도허티 씨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그는 새로운 치료법의 임상시험에 자원했고 단 1번의 주사치료로 완치판정을 받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해당 치료법은 ‘크리스퍼-캐스9(CRISPR-Cas9)’으로, 도허티씨의 유전자를 편집해 병을 고치는 기술”이라며 “이 기술은 실험실에서 진료소로 빠르게 이동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크리스퍼-캐스9은 정확한 위치에서 DNA를 자르는 한쌍의 분자 가위처럼 작동한다. 약에 부착된 RNA(단일가닥 버전의 DNA) 조각이 절단효소인 캐스9을 안내한다. DNA가 절단되면 세포의 자연적인 복구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유전자편집 의약품은 이러한 자연적인 세포시스템을 장악해 기존의 문제가 있는 코드 부분을 새롭게 수정된 서열로 대체한다.

과학자들은 이미 유전자편집을 사용해 실명을 유발하는 유전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시력을 개선한 바 있다. 또 겸상(낫 모양)적혈구질환을 치료하고 청각장애가 있는 쥐의 청력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새로운 종류의 의약품은 내년쯤 심혈관질환과 암을 치료하는 데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보다 정확하고 효율적인 차세대 유전자편집 도구도 속속 시험중에 있다.

놀라운 혁신의 속도

혁신의 속도는 놀랍다. 2012년 실험실에서 크리스퍼-캐스9이 발견됐고 불과 3년 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생명공학 벤처기업 ‘e제네시스’는 이를 사용해 돼지배아를 편집해 인간에게 이식하기에 더 적합한 장기를 만들었다. 2016년에는 몸에서 제거된 면역세포를 편집해 암과 더 잘 싸우도록 돕고 다시 암이 재발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크리스퍼-캐스9 치료법이 승인됐다.

이듬해 매사추세츠주 보스턴과 스위스 추크에 본사를 둔 제약회사 ‘버텍스’와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는 겸상적혈구질환과 베타 지중해빈혈이라는 2가지 질환을 치료하는 ‘CTX001’이라는 치료제를 공동개발한다고 발표했다. 두 질환 모두 적혈구가 산소를 운반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을 만드는 지침에 유전적 결함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현재 ‘카스제비(Casgevy)’로 불리는 CTX001은 2023년 11월 출시됐으며, 1회 치료비용은 220만달러에 달한다. 이 치료법은 환자의 혈액 줄기세포를 채취해 그 안에 있는 유전자를 편집, 일반적으로 아기가 자궁에 있을 때만 생성되는 헤모글로빈의 생산을 다시 시작하게 만든 뒤 그 줄기세포를 다시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면 환자는 혈액질환 증상을 치료할 수 있는 건강한 적혈구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크리스퍼-캐스9에는 장점이 있는 만큼 한계도 있다. RNA 가이드 분자가 때때로 정확하지 않아 환자의 다른 DNA를 의도치 않게 절단할 수 있다. 또 이 도구는 DNA 나선의 두 가닥을 모두 끊기 때문에 후속 복구과정에서 원치 않는 삽입이나 삭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유전정보 손상은 결국 암으로 이어지거나 다른 방식으로 세포기능을 방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기술에 대한 업데이트가 진행중이다. 예를 들어 ‘크리스퍼-캐스9 니카제’는 DNA 이중나선의 한 가닥만 절단하는 효소다. 따라서 유전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니카제를 쌍으로 사용해야 하며, 이는 표적을 벗어난 효과의 위험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편집에 사용되는 두 니카제가 같은 DNA 섹션에 잘못 결합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인 ‘염기편집(base editing)’은 절단 없이도 DNA 염기알파벳 한 글자를 화학적으로 다른 글자로 바꿀 수 있다.

이러한 기술 중 일부는 이미 임상에서 사용되고 있다. 2022년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을 앓는 한 환자가 임상시험 일환으로 염기편집 치료제를 주입받았다. 250명 중 1명꼴로 앓는 이 질환은 혈액에서 나쁜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버브 테라퓨틱스(Verve Therapeutics)’가 만든 치료제 ‘버브-101’은 DNA의 염기알파벳 A를 G로 변경해 간에서 PCSK9 유전자를 끈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본사를 둔 ‘빔 테라퓨틱스(Beam Therapeutics)’는 다양한 질환에 대한 치료법을 만들기 위해 염기편집을 사용하고 있다. 백혈병을 더 잘 공격할 수 있도록 면역세포에 A, G, C, T 4가지 염기알파벳을 변경하는 것과 카스제비처럼 동일한 질병에 효과가 있는 제품이 포함된다. 이 회사는 자사의 염기편집 약물이 크리스퍼-캐스9보다 더 잘 작동하고 더 높은 수준의 헤모글로빈을 전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염기편집 기술의 초기시험 데이터는 올해 하반기에 나올 예정이다.

‘프라임편집(prime editing)’도 임상단계에 있다. 프라임편집은 캐스9 니카제와 함께 DNA의 정확한 영역을 찾을 뿐만 아니라 원하는 변화의 템플릿을 운반하는 특수설계된 RNA 가이드를 사용한다. 또 ‘역전사 효소’라는 효소가 크리스퍼 단백질에 부착돼 있다. 이 효소는 RNA 템플릿을 읽고 원하는 위치에 정확한 DNA 서열을 합성해 정밀하게 편집된 유전자를 제공한다.

올해 4월 하버드대 분자생물학자 데이비드 류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프라임 편집의 첫 임상시험이 승인됐다는 소식을 X(옛 트위터)에 올렸다. 이 기술에 대한 첫번째 논문을 발표한 지 4년반 만의 일이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생명공학기업 ‘프라임 메디신(Prime Medicine)’은 이미 만성 육아종성 질환 치료를 위한 약물 ‘PM359’의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이는 감염을 막는 혈액의 능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질환이다.

프라임 편집처럼 게놈의 더 큰 부분을 변경할 수 있으면 헌팅턴병처럼 이상증세가 인체 곳곳으로 뻗어가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헌팅턴병은 뇌 신경세포가 퇴화되면서 발생하는 선천성 중추신경계 질병이다.

또 희귀질환 치료의 일반적 문제인 경제성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유전자의 단일 돌연변이를 치료하는 약을 만드는 대신 한번의 교정으로 여러 유형의 돌연변이를 교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론적으로 이 기술의 유연성은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적 변이의 거의 90%를 교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유전자편집 도구의 기술 발전은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 6월 네이처지에 자세히 소개된 ‘브릿지 RNA’라는 기술은 절단할 유전체의 표적부위뿐만 아니라 편집할 DNA도 지정할 수 있는 일종의 가이드 RNA를 사용한다. 이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면 대규모의 DNA를 삽입, 제거 또는 역위시킬 수 있다.

치료 플랫폼으로 발전 전망

이러한 모든 새로운 기술은 앞으로 수년 동안 기술 및 안전상의 장애물에 직면할 전망이다. 주요 문제는 치료법을 인체의 정확한 위치에 전달하는 방법이다. 혈액세포 암 망막 간은 모두 쉽게 접근하고 편집할 수 있다. 하지만 뇌와 폐는 더 어렵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아에라 테라퓨틱스(Aera Therapeutics)’가 제안한 한가지 해결책은 단백질 껍질을 가진 나노입자 ‘캡시드(capsid)’다. 인체 단백질을 기반으로 한 이 나노입자는 다양한 조직을 표적으로 삼으면서도 인체 면역체계의 강한 반응을 유발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도전과제는 경제성이다. 차세대 게놈 의약품 가격은 너무 비싸다. 혈우병 B 유전자 치료제 ‘헴제닉스’ 주사 가격은 350만달러다. 카스제비보다 약 100만달러 더 비싸다. 제약사들은 약품 개발 및 제조에 들어간 비용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환자가 평생 동안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높은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고 여긴다.

시간이 지나면 비용이 내려갈 수 있다. 심장병과 같이 대규모 환자 그룹에 영향을 미치는 질병의 치료법이 나오면 비용절감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유전자편집 도구가 핵심기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질병에 맞게 유전자를 바꾸는 특정지침만 조정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렇게 되면 모든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유전자편집 기술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신약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시기의 문제일 수 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