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천재가 인재가 되지 않도록 사전 대비를
기후위기를 지나 기후재앙의 시대가 됐다. 폭염·폭우·폭설이, 국지성 호우·아열대기후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다. 기상이변은 더 이상 이변이 아닌 현실이 됐다.
7월 한달간 809㎜가 내렸다. 부여군 연평균강수량인 1326.6㎜의 절반이 넘는다. 양화면은 지난달 10일 시간당 106㎜, 1일 최고 강우량 252㎜가 내렸다. 그야말로 물폭탄이 떨어졌다. 손을 쓸 수 없이 퍼붓듯 쏟아진 야행성 폭우로 피해액이 261억원에 이른다. 200년 만의 극한호우였다. 천재지변이다. 지난해는 100년만의 호우였다.
부여군은 3년 연속 산사태 농경지·주택침수 등 수해로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 3년간 수해현장을 돌아보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농업인 전문가 정부부처 관계자 등을 만나고 직접 현장을 살피고 분석한 결과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천재지변을 인력으로 막을 도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반복 피해가 예견되는 곳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여군의 경지정리는 대부분 1980~1990년대에 이뤄졌다. 그 당시 벼 재배 수준에 맞춰 물길을 내고 물을 담아둘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 경지에 30~40년이 흐른 지금 벼 대신 시설하우스에 방울토마토 수박 멜론 등 원예작물을 재배한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으니 탈이 안 날 수가 없다. 시설하우스는 번번이 침수됐고 그때마다 농가에는 천재지변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위로했다. 쌀 과잉 시대, 타작물 생산을 권장하는 시대에 몸에 맞지 않으니 다시 벼 재배를 권해야 하는 걸까?
달라진 시대에 맞는 방재기반 구축
현장에 늘 답이 있다. 답은 달라진 시대에 맞는 방재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폭우에 대비한 농업생산 기반시설 구축이 필요하다. 배수장 용량 및 유수지 확장, 간이 배수펌프 설치, 저수지·소류지, 배수로 개선 등 부족한 저수용량을 늘리기 위한 보강 및 확충이 필요하다.
둘째, 농경지 배수 시설물 설계기준 상향이 필요하다. 기설치된 배수장의 용량은 대부분 수도작에 맞춰 20년 빈도로 설계됐다. 최근 타작물일 경우 30년 이상으로 개정됐지만 100년 이상 빈도의 폭우가 연이어 내리는 지금 적어도 본류 하천 하류나 저지대에 대해서는 지역 현황을 반영한 배수 개선이 필요하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배수개선사업지침 등 관련 규정 개정이 시급하다.
셋째, 배수 관련 시설물 관리 주체의 일원화가 필요하다. 배수장과 배수문의 관리 주체는 각각 농어촌공사와 지자체로, 책임 소재와 관리 권한 등에 기관 간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유기적으로 협력할 방안이 수립되거나 관리주체를 일원화해야 한다.
넷째, 배수문 관리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배수문은 홍수 시 수위조절로 농경지, 저지대의 침수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배수문은 이장이나 마을 주민 등 비전문가가 관리하는데 엄중한 업무에 반해 권한이나 책임을 담보할 어떠한 근거가 없다. 자동화 배수장치에 한계가 있는 만큼 배수문 관리자의 전문성 함양을 위한 주기적인 교육이 절실하다.
폭우 대비 기반 확충·제도 개선해야
특별재난지역도 어찌보면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것으로도 수재민들의 상처를 치유할 순 없을 것이다.
재해는 늘 약한 곳을 파고들어 생채기를 낸다. 재해가 터진 곳은 우리의 취약점이자,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는 신호다. 천재(天災)가 인재(人災)가 되지 않도록, 민심(民心)이 역심(逆心)이 되지 않도록 극한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방재 관련 제도개선과 기반을 새로이 확충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