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장 교체 앞둔
인권위원회 정상화될까
‘소위 의결 정족수’ 법원 제동
지난 6월말 국가인권위원회 소속 위원 일부가 전원위원회 출석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후 인권위가 만신창이가 됐다. 이들은 현 위원장의 운영방식에 문제를 삼았지만 오히려 법원은 위원회의 변종 운영에 제동을 걸었다. 새로운 위원장이 선임될 경우 인권위 운영이 정상화될지 관심이다.
5일 인권위 등에 따르면 송두환 현 국가인권위원장의 후임이 이르면 이번주 중 결정될 전망이다.
지난 6월말 김용원·이충상 인권위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원 6명이 전원위 출석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송 위원장의 독단적인 위원회 운영을 참을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발단은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다. 수요집회 현장에서 위안부 할머니 등에 대한 혐오성 집회가 이어지자 정의기억연대 등은 ‘혐오집회를 멈추게 해달라’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지난해 8월 진정을 맡은 인권위 인권침해구제 제1위원회(침해1소위)는 이를 기각했다. 인권위 소위는 3명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장인 김용원 위원 등 2명이 기각을, 나머지 1명이 인용을 주장했다.
인권위 소위는 가결과 부결, 권고, 기각, 각하, 타 구제절차 이송, 수사의뢰 등 모든 결정을 만장일치로 의결해 왔다. 하지만 김 위원은 다수결의 원칙을 강조했다. 1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을 경우 다수가 지지하는 결론이 맞다며 정의연 진정을 기각했다.
한발 더 나가 인권위 내부 운영 규정을 바꾸려고 했다. 소위원회에서 3명 이상이 찬성하지 않을 경우 진정을 기각 또는 배척되는 것으로 보고 전원위에 회부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인권위 전원위에 제출했다.
2001년 인권위 출범 이후 인권위는 소위원회에서 1명이라도 차별 시정 등을 인용하는 의견을 내놓을 경우 기각하지 않았다. 1명이라도 인권 침해를 지적하면 깊은 논의를 위해 전원위에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한 것이다. 이는 소수 의견이라도 전원위에서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인권위 내부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 등이 규정 변경을 고수하자 전직 인권위원들까지 나섰다.
지난해 12월에는 최영애 전 인권위원장 등 전 인권위원 15명이 “인권위법 위반은 물론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인권위 임무를 약화시킨다”면서 반발했다. 최 전 위원장 등은 “법률상 규정이 있는데도 인권위가 의결 요건을 사실상 완화하면 법률 체계상 당연 무효”라며 “불이익을 받은 당사자가 행정 소송 등으로 다투게 되고, 법원은 의결을 무효 또는 취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직 인권위원들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정의연은 지난해 10월 법원에 인권위 진정사건 기각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9개월 만인 지난달 2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6부(나진이 부장판사)는 정의연(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인권위법 13조의 문헌 체계와 입법 취지를 볼 때 진정을 기각하는 경우에도 3명 이상 출석과 3명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정의연 진정 기각 처분은) 법률조항에서 정한 의결 정족수인 위원 3명의 찬성 없이 이뤄져 위법하다”고 밝혔다. 또 “의견 수렴 없이 소위 위원 이의제기에도 이렇게 진행하는 것은 평등 원칙과 신뢰 보호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1심 판단이기는 하지만 인권위 결정이 행정소송 대상이 된 것도,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 받은 것도 이례적이다.
법원 제동과 인권위원장 교체에도 불구하고 인권위 내홍이 그칠지는 미지수다.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한 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 등 전국 96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달 30일 “인권감수성과 경험을 가진 인권위원장을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인권위원장 후보추천위원회는 김진숙 김태훈 안창호 정상환 한상희 등 5명을 최종 후보로 선정해 윤 대통령에게 추천한 바 있다.
국회 운영위원회 소속 윤종군(더불어민주당, 경기 안성) 의원은 “윤석열정부는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 여부와 무관하게 인사를 강행하고 있다”며 “반인권적 인사를 인권위에 들인다면 국내 인권 상황 후퇴는 물론 오는 10월 예정된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에도 패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