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대통령 거부권 놓고 노사대립
노동계 “약자 보호법”, 경영계 “불법파업 조장”
이정식 장관 “결코 동의 못해” 거부권 건의 시사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주도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5일 다시 한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노동계와 경영계가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폐기된 노란봉투법이 보다 더 강화된 내용으로 22대 국회에서 다시 통과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를 원청기업 등으로 확대해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쟁의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손배소송을 막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란봉투법이라는 별칭은 2014년 쌍용차 파업으로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노조 조합원을 도우려고 시민단체들이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보낸 데서 비롯됐다.
노조법 개정안 2조 용어 정의 부분의 ‘사용자’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하청업체 등 간접고용 근로자도 원청 사용자와 단체교섭 등을 할 수 있도록 해 노동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노동쟁의’의 대상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확대해 쟁의행위 범위를 넓히는 내용도 담았다.
‘노동조합’ 정의에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는 노조로 보지 않는다는 부분을 삭제한 것도 새로운 내용이다. 특수형태근로(특고)·플랫폼 종사자 등의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노조법 개정안 3조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조항엔 단체교섭, 쟁의행위 외에 “그 밖의 노동조합 활동으로 손해를 입은 경우”를 추가하도록 했다.
또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노조 또는 근로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부득이하게 손해를 가한 경우엔 배상 책임이 없도록 했다. 법원은 배상 의무자별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하며 신원보증인에게는 배상 책임을 물리지 않는 내용 등도 담겼다.
이날 법안 통과 후 양대노총은 노란봉투법이 “노동약자 보호를 위한 법”이라며 윤 대통령이 즉시 공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대통령이 입으로는 ‘노동약자 보호’를 말하면서 정작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묻지마 거부권’을 남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거부권 행사 도돌이표를 멈추고 노동약자 보호의 진심을 보여달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도 노란봉투법 통과로 “사내하청·파견·용역·자회사·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가 진짜 사장인 원청과 단체교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노조를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는 결정적 단초를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전체 노동자의 투쟁으로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반면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이 산업현장에 혼란을 가져오고 불법 쟁의행위를 조장할 것이라고 반대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은 “법안이 가져올 산업현장의 혼란과 경제적 파국을 막을 유일한 방법은 대통령 거부권밖에 없다”고 밝혔다.
정부도 경영계의 우려와 입장을 같이 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노란봉투법이 “산업현장의 갈등과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법안”이라며 “국민의 어려움과 노사관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예견됨에도 이를 외면하는 개정안에 정부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산업현장과 노사관계 당사자,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 정부가 해야 할 책무를 다하겠다”며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