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A(국제에너지기구), 석유의 미래 놓고 OPEC과 충돌
에너지안보 아닌 기후변화 방점, 피크오일도 이견 … FT “트럼프 당선시 갈등 심해질 것”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점차 강조하면서 화석연료업계와 지속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올 연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IEA와 미국정부의 갈등이 고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6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IEA 사무총장 파티 비롤은 지난 6월 “석유·가스 회사들은 화석연료 생산을 늘린다는 기존 사업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중국경제가 둔화되는 한편 더 많은 소비자가 전기자동차로 전환해 석유와 가스 수요가 감소한다며 “화석연료업계가 계속 생산을 늘릴 경우 2020년대 말 전세계가 ‘엄청난 석유 과잉’에 신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메이저석유기업들은 비롤이 정치를 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에너지에 대해 중립적이고 냉정한 데이터와 분석을 내놓았던 IEA가 당파적으로 변했다고 보고 있다. 석유회사 한 최고경영자는 “IEA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에너지안보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크오일 2029년 vs 2045년
한때 에너지전망에 대해 긴밀히 협력했던 IEA와 OPEC은 이제 석유의 미래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IEA는 2029년 세계가 하루 1억560만배럴 소비를 끝으로 피크오일(석유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OPEC은 2045년까지 석유 사용량이 하루 최소 1억1600만배럴로 증가하면서 정점에 도달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록적인 석유와 가스를 생산하는 미국에서도 IEA는 정치적 표적이 됐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IEA에 대한 미국의 자금지원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고, 트럼프행정부 전직 관리들은 트럼프가 재선되면 비롤 사무총장을 축출할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트럼프 예비내각’으로도 불리는 싱크탱크 ‘미국우선정책연구소’의 에너지정책 담당 칼라 샌즈는 “차기 대통령은 IEA를 에너지안보 증진이라는 본래의 초당파적 임무기관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며 “미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단체에 납세자의 돈을 지원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비롤 사무총장은 “IEA 활동에 대한 칭찬이 비판보다 훨씬 많다”며 “우리에게는 도달해야 할 아름다운 목표가 있다.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멍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IEA의 예측은 중요하다. 각국 정부와 석유회사, 투자자들은 IEA를 글로벌 에너지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으로서 본다. IEA를 통해 정책과 전략을 수립한다. 하지만 IEA는 과거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보급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기후운동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현재는 화석연료 옹호론자들로부터 에너지전환을 지나치게 지지한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2027년 3번째 임기가 끝나는 비롤 사무총장은 “2030년이 되면 하루 800만배럴의 과잉석유가 공급될 것”이라며 “코로나19 팬데믹을 제외하면 역사상 이런 일은 없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자 한다. 거기서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IEA는 1973년 OPEC의 석유엠바고로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정부간기구로 설립됐다. 에너지 관련 데이터와 분석을 제공하고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16개 회원국의 전략비축유를 관리하면서 에너지안보를 보장하는 것이 임무였다. IEA가 매년 제공하는 ‘세계에너지전망보고서’는 정책입안자와 에너지기업들의 벤치마크가 됐다.
비롤의 지휘 아래 IEA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OPEC에 몸담다 1995년 IEA에 합류한 경제학자 비롤은 2015년 사무총장에 오르면서 IEA의 세계관을 넓히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런던이나 파리, 브뤼셀이 아닌 베이징에서 첫 연설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주요 경제국이 참여하지 않는 기구를 ‘국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후 IEA는 15개국을 정회원으로, 13개국을 준회원으로 추가 가입시켰다. 여기에는 중국과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포함됐다. 이로써 IEA는 전세계 에너지시스템의 80%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에너지 지각변동에 대한 글로벌 관점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비롤 사무총장은 IEA의 예측에 이의를 제기하는 석유회사들에 대해 “서방에 국한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며 “중국에서 전기차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도 임기초 수년 동안은 ‘에너지안보’를 중시하는 IEA 전통을 고수했다. IEA는 2017년 공개한 모든 시나리오별 상황에서 석유와 가스 수요가 2040년까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비롤은 2017년 1월 글로벌 에너지 컨퍼런스(CERAWeek)에서 업계에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이는 석유업계에 호재였다. 기업들은 IEA 수치를 언급하며 새로운 석유·가스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지만 비롤 사무총장의 IEA는 2018년 방향을 전환했다. 지구온난화를 1.5℃로 제한하는 목표가 위험에 처했다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특별보고서가 발표되면서다. 비롤 사무총장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에너지부문에 분석뿐 아니라 권고지침도 제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당시 동료들과 회의를 하면서 1.5℃에 맞춰 에너지부문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회상했다.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세계 에너지 사용량이 급감하자 IEA는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2050년까지 풍력·태양광 발전량을 4배 늘리고, 2035년까지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 바꾸며, 새로운 유전·가스전을 개발하지 않는 ‘순배출 제로 시나리오(net zero emission scenario·NZE)’는 환경운동가와 정책입안자 및 기업들이 전환의 속도를 조절하는 데 활용됐다.
IEA의 친환경 피벗은 재정적 이익도 가져왔다. 회원국들에 에너지전환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면서 ‘자발적 분담금’을 받았다. 또 ‘청정에너지전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연간 2000만유로 추가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비롤 사무총장은 “이 추가자금으로 IEA 규모가 2배 이상 커졌다”며 “취임 당시 200여명이었던 직원은 현재 42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동시에 IEA 발행 보고서도 급증했다. 비롤이 임명된 2015년 37건에 그쳤던 보고서는 2022년 197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틀에 1건꼴이다. IEA 수석이코노미스트인 팀 굴드는 “가장 큰 우선순위는 회원국들의 자문 요청에 대응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라며 “정치와 에너지, 정책선택 및 실행과 관련해 상황이 매우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에너지전환, 되돌릴 수 없는 흐름”
화석연료업계는 기업들이 실제로 활동을 축소할 경우 에너지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며 IEA의 피크오일 예측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OPEC 사무총장 하이탐 알 가이스는 지난 6월 “2020년대 말 석유수요가 최대치에 달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건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라며 “IEA는 휘발유 수요가 2019년 정점에 달했다고 주장했지만 휘발유 소비는 지난해 최대기록을 경신했으며 올해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또 석탄 수요가 2014년에 정점에 달했다고 발표했지만 오늘날에도 석탄 소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상원 에너지위원회 소속 공화당 존 바라소 의원은 “IEA 모델은 투자와 정책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모델은 사실에 기반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IEA는 데이터에 중립적인 관찰자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세계에너지전망보고서 수석 저자인 로라 코치는 “연구원들은 보고서를 위해 모든 회원국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모든 에너지 정책을 평가한다”며 “미국에서는 전기차 판매량이 둔화되고 있지만, 동시에 중국에서는 매우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판매되는 제품뿐 아니라 누가 (전기차) 제조를 확장하고 있는지도 살펴본다”고 말했다. 그는 “연료와 기술, 에너지 부문의 모든 측면, 기술정책, 투자측면에서 우리 보고서만큼 포괄적인 모델은 없다”고 말했다.
IEA에게 가장 큰 도전은 트럼프의 당선이 될 전망이다. 미국은 IEA 예산의 주요 분담국이다. 트럼프는 재선에 성공할 경우 화석연료 생산 증대를 촉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정부의 한 전직 관리는 “미래의 트럼프 백악관은 IEA의 목적과 리더십, 미래에 의문을 제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롤은 그 누구도 에너지전환 추세를 막을 수 없다고 여긴다. 그는 “정치적 변화가 에너지전환에 영향을 미쳐 이 나라에서는 속도가 느려지고 저 나라에서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며 “하지만 경제 펀더멘털과 기술 트렌드를 보면 이제 에너지전환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이동방향은 매우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