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의 길이냐, 노무현의 길이냐…한동훈의 선택은
한 대표, 윤 대통령과 차별화냐 손잡기냐 갈림길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 추진 여부가 가늠자
현재권력(대통령)과 미래권력(여당 차기주자) 사이의 관계는 재집권 여부를 좌우하는 주요 변수로 꼽힌다. 때로는 두 사람이 손잡고 재집권을 향해 힘을 모았지만, 때로는 미래권력이 현재권력과의 차별화를 꾀하기도 했다. 어느 쪽이 재집권을 보장하는 정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때그때마다 결과가 달랐기 때문이다. 여권 차기주자로 꼽히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어느 쪽을 택할까.
◆‘갈등=패배’, 정답? 오답? = 7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미래권력 차별화의 대표 사례로는 1997년 대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회창 후보가 꼽힌다. 정치 입문 때부터 김 대통령과의 관계가 심상치 않았던 이 후보는 대선을 앞두고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김 대통령이 야당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유보시키자, 이 후보는 김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 후보 지지자들은 김 대통령의 마스코트 화형식까지 치렀다. 결국 이 후보는 낙선했다. 두 사람의 갈등은 지금껏 “현재-미래권력이 싸우면 공멸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대표 사례로 등장한다.
반면 현재-미래권력이 손잡은 사례로는 김대중 대통령-노무현 후보가 꼽힌다. 김 대통령이 아들·측근 비리 문제로 인해 임기 막판 국정지지도가 20%대까지 추락했지만, 노 후보는 “김 대통령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승계하겠다”며 감쌌다. 노 후보는 가까스로 당선됐다. 두 사람의 공조는 “현재-미래권력이 손잡아야 재집권할 수 있다”는 논리를 설파하는 근거로 쓰이곤 한다.
하지만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8차례 대선에서 ‘갈등=패배’ ‘공조=승리’ 공식이 항상 적중했던 건 아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 후보와의 갈등 끝에 탈당까지 했지만, 김 후보가 대선에서 이겼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도 임기 내내 갈등을 빚었지만 재집권에 성공했다.
◆한 대표 ‘제3자 특검법’ 무게 = 여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의 관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7.23 전당대회에서 한 대표와 겨뤘던 경쟁자들은 윤 대통령과 냉랭한 관계인 한 후보가 대표가 되면 “재집권에 실패할 것”이라고 공격했다.
윤석열정권의 ‘황태자’로 불렸던 한 대표는 지난해 말 윤 대통령의 배려 속에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부터는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하는 것으로 읽힐만한 행보를 보여 왔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의혹이 커지자 “국민의 눈높이”를 거론하며 윤 대통령 부부를 겨냥했다. 대통령실과 친윤이 ‘야당의 탄핵 노림수’라며 반대하는 ‘채 상병 특검법’의 ‘한동훈식 수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친윤의 저지를 뚫고 대표로 당선된 뒤에는 친윤 정점식 정책위의장 교체를 강행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 확실한 차별화의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을 택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는 자신이 제기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이하 ‘제3자 특검법’) 추진 여부가 꼽힌다.
한 대표가 조만간 ‘제3자 특검법’을 추진해 성사시킨다면 윤 대통령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반면 ‘제3자 특검법’을 “다수 의원이 반대하니 접겠다”며 포기한다면 윤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을 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현재로선 한 대표가 ‘제3자 특검법’을 추진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한 대표측은 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을 계속 거부해 온 게 민심의 이탈을 불러온 만큼 ‘제3자 특검법’으로 절충하는 게 보수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본다. 한 대표가 민심이 찬성하는 ‘채 상병 특검법’을 ‘제3자 특검법’으로 절충해내는 방식으로 윤 대통령과 차별화해야 차기 도전에도 보탬이 될 것이란 계산이다.
한 대표 측근인사는 6일 “(한 대표가) 특검법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대표가 된 의미가 없다. 보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제3자 특검법’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 대표 주변에서는 한 대표가 ‘제3자 특검법’을 추진하면 상당수 여당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찬성 입장을 표명할 것이란 기대를 내비친다.
대통령실과 친윤에서는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할 욕심으로 ‘제3자 특검법’을 추진한다면 당은 극심한 분열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친윤 인사는 “만약 (한 대표가) 소수 친한 의원을 앞세워 야당과 야합해서 특검법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킨다면 당은 두 동강 날 수밖에 없다”며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다수 의원과 당원이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친윤 인사는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외연확장을 꾀한다는데, 그렇게 해서 얻어질 표는 절대 많지 않다. 오히려 보수지지층 분열로 인해 한 대표가 잃는 표가 훨씬 많을 것이다. 한 대표가 대권을 꿈꾼다면 차별화를 통해 얻을 표와 잃을 표를 잘 계산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