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화재에 ‘지하주차장 층고’ 기준 논란
주차장법엔 2.7m, 구급차·소방차 2.8m 이상
인천 서구청장 “지하주차장 층고 기준 바꿔야”
지난 1일 발생한 인천 서구 전기차 화재를 계기로 지하주차장 층고(높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높이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해 피해를 키운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7일 인천 서구와 소방청 등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인천 서구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높이는 2.3m다. 국토교통부가 2018년 6월 지상 공원형 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최소 높이를 2.7m로 상향했지만 이 아파트는 이보다 앞선 2017년 12월 사용승인을 받아 이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당시 국토부가 지하주차장 높이를 변경한 이유는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촉발된 택배차량 진입 갈등 때문이다. 높이 2.7m는 택배차량인 탑차의 높이를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관련 규정을 바꾸면서 간과한 부분이 있다. 119구급차나 소형펌프차(소방차)의 높이다.
이들 차량의 높이 기준은 일반적으로 2.8m 이상이다. 3m가 넘는 구급차도 있다. 경광등과 방수포 등 특별한 장비가 장착되기 때문에 다른 차량보다 높이가 10㎝ 이상 높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는 구급차나 소형펌프차가 진입할 수 없다. 이번에 화재가 발생해 대규모 재난으로 번진 인천 아파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고 당시 출동한 소방서는 전기차 화재진압장비와 소형펌프차 등을 모두 갖추고 있었지만 지하주차장 높이 때문에 불이 난 지하주차장엔 진입을 할 수 없었다.
강범석 인천 서구청장은 사고 직후 현장을 둘러본 뒤 이 문제를 확인하고 정부에 제도개선을 건의하기로 했다.
강 구청장은 “현장에 화재진압을 위한 장비들이 출동했지만 주차장 높이가 낮아 어떤 장비도 진입할 수 없었다”며 “주거비율 중 아파트가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규모도 대형화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규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행정안전부와 소방청도 제도의 미비점을 인정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하공간 전기차 화재를 대형 참사를 불러올 수 있는 잠재적 재난 위험요인으로 분류하고 있고, 현재 관련 대책을 검토 중”이라며 “이번 기회에 지하주차장 높이 문제도 함께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파트 지하주차장 높이 기준을 상향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지어진 아파트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소방장비 높이를 개선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기존 아파트 지하주차장 현실을 고려하면 높이가 2.3m 이하인 특수 구급차나 소방차를 현장에 배치할 필요가 있다”며 “관련 기준 변경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소방청 등 재난대응기관들이 능동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하공간 스프링클러 점검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화재 역시 다른 차량화재와 마찬가지로 방수, 즉 물을 뿌리거나 물이 든 수조에 차량을 담그는 방법이 현재까지는 가장 효과적인 진화 방법이다. 최근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가 잇따르고 있고, 화재진압장비 진입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유일한 대응방법이다.
실제 이번에 사고가 난 인천 아파트도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아파트단지에서 소방시설 관리자로 일하는 박남흥씨는 “인천 전기차 화재 진화에 8시간 20분이 소요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기차 화재 진화에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그리고 전기화재인데도 뜻밖에 가장 효과적인 소화 방법이 ‘주수 소화’라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리자는 “당장 내가 일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스프링클러와 동작감지기부터 점검해야겠다”고 덧붙였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