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과 분리 사이’ 기로에 선 행정안전부
제주 기초 부활, 대구·경북은 광역통합
주민투표 요구에 행안부 수용여부 관심
행정안전부가 광역지방자치단체 통합을 추진 중인 대구·경북과 기초지방자치단체 부활을 요구하고 있는 제주도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다. 통합과 분리라는 전혀 다른 방향의 행정체제개편안을 모두 지원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8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구·경북에서 촉발된 행정통합 논의는 이미 큰 흐름을 만들고 있다. 대구·경북은 올해 안에 특별법을 제정하고 2026년 민선 9기 때 통합 지자체를 출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다른 광역지자체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부산·경남이 통합논의를 시작했고, 대전·세종·충남·충북과 광주·전남도 물밑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이 같은 흐름은 전북 전주·완주처럼 광역을 넘어 기초자치단체까지 확산되고 있다. 소멸위기에 놓인 지자체들이 행정 효율과 규모의 경제 논리를 앞세워 몸집 부풀리기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행안부도 지자체들의 움직임을 반기는 분위기다.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행정체제개편을 시도했다. 방향은 행정통합 쪽으로 기울어있다. 다만 정부 주도 통합 논의가 성공한 경우가 많지 않다. 충북 청주·청원이 통합한 청주시와 경남 마산·창원·진해가 통합한 창원시가 성공한 사례에 속한다.
이 때문에 지자체들이 자발적으로 통합을 논의하는 지금이 행정체제개편을 단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대구·경북 통합 ‘범정부 지원단’을 구성한 것도, ‘미래지향적 행정체제개편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대구·경북 일부에서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부담이다.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등이 주도하는 ‘통합 우리 손으로 준비위원회’는 지난 4일 대구YMCA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도민이 주체가 돼 참여해야 한다”며 “행정통합 찬반 주민투표를 통해 시·도민 의견을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풀뿌리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제도적 방안 보장과 제왕적 단체장 탄생을 방지하는 선거구제 도입 등도 필요하다”며 “행정통합 특별법에는 연방제에 준하는 분권과 자치 권한을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받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불거진 제주도의 기초자치단체 설치 요구는 행안부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행정통합을 추진한 또 하나의 성공 사례다. 2006년까지 광역지자체인 도와 4개의 기초지자체 체제였던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로 출범하면서 기초지자체를 모두 없애는 단층 구조가 됐다. 단층제로 인해 생길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제주시와 서귀포시 2개의 행정시를 만들어 보충했다.
문제는 제주도가 2006년 7월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사라진 기초지자체 부활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는 올해 1월 17일 동제주시·서제주시·서귀포시를 설치하는 방안을 도지사에게 최종 권고했고, 도는 이를 공식 방안으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7일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전담팀을 본격 가동했다. 논의가 무르익은 만큼 본격적인 행정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의미다. 앞서 지난달 25일 행안부에 주민투표 승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다른 지자체들의 행정통합 논의와 제주의 기초지자체 설치 논의는 낡은 행정체제를 새로운 상황에 맞게 개선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며 “중앙정부도 제주의 새로운 시도에 적극 호응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주도와 대구·경북 시민사회 두 곳에서 모두 주민투표 요구를 받고 있는 행안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심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통합 논의가 행정체제개편의 방향성에는 맞다고 보지만 제주의 기초지자체 설치 요구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