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이야기

직장 내 괴롭힘, 기업과 정부가 해야 할 일

2024-08-09 13:00:04 게재

지난 7월 16일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5년이 흘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접수된 신고는 지난해 1만28건으로 급증했다. 신고 사건이 급증한 것을 두고 허위신고 등 오·남용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법 제·개정으로 인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식이 확대된 긍정적인 영향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고용부가 발주한 연구용역 결과에는 괴롭힘을 ‘일회성 괴롭힘’과 ‘기타(지속·반복) 괴롭힘’으로 구분하고 지속·반복의 경우 ‘3개월 이상 지속, 평균 주 1회 이상 반복’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법 개정을 제안했다. 고용부는 이를 근거로 직장 내 괴롭힘 인정요건을 구체화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필자는 지속성·반복성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는 있으나 개별 사안의 특성 배경 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보고서 내용대로 구체화할 경우 인정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한다. 지난 5년간 축적된 사례와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고용부에서 조속히 새로운 매뉴얼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고용부에 접수된 전체 건수 대비 인정 비율이 7.1%로 낮은 배경에는 △허위신고 등 오·남용 △인정요건에 대한 모호성 △객관적 조사 및 피해자 보호조치, 가해자 처분 등 법에서 부여하고 있는 의무 이행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점 △일선 고용노동청의 담당 인력 부족과 제도·시스템 미비 등을 생각할 수 있다.

ADR 활성화를 통한 분쟁해결 모색 필요

일본의 경우 이미 분쟁해결 관련 촉진법에 따라 대안적 분쟁해결시스템(ADR)이 활성화돼있다. 노동국 분쟁조정위원회나 사회보험노무사회 노동분쟁해결센터 등 민간ADR 기구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 분쟁에 대한 상담·알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4월 후쿠오카 사회보험노무사회 방문 당시 2020년 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사안 중 ‘왕따·괴롭힘’이 28%로 가장 많은 사안이라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사업장 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사업장 규모나 여건별로 대응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대표자나 임원이 직접 개입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대부분 피해자나 가해자가 조직을 떠나는 것으로 정리되기 일쑤다. 별도의 고충처리 담당자가 지정돼 있더라도 일선 부서나 현장에서 이미 갈등이 표면화된 사안들을 직접 컨트롤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하기에 급급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 공인된 민간ADR 기구에 고충처리절차 자체를 위탁할 수 있다면 분쟁해결이 보다 효과적일 것 같다.

우리도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노동위원회에 직장 내 괴롭힘 분쟁해결 관련 기구를 설치하고 민간 ADR 활성화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 분쟁해결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주길 기대한다.

정부의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지난 30여년간 여러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낭비된 경제적 비용이 총 2600조원이 넘고 노동갈등으로 인한 비용은 약 306조원으로 두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개별 기업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 비용도 이제는 위협적인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영진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법·제도의 미비점과 시행착오 등 혼란을 명분 삼아 많은 회사들이 법에서 정하는 최소한의 의무만을 이행하고 고용노동청에서 괴롭힘이 인정된 사안에서조차 개선조치 명령에 대해 외부 기관에 의뢰해 받은 결과보고서를 형식적으로 제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사내 고충처리시스템을 통한 적극 대처해야

한국노동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집단 간 권력 차이가 큰 경우, 조직 내 연령과 신분상 다양성이 큰 경우, 전국에 걸쳐 사업장이 분산된 경우, 청년층의 유입이 많은 경우 등이 직장 내 괴롭힘 유발 가능성을 증가시킨다고 분석했다.

우리 회사나 기관이 여기에 해당하고 이미 사내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면 사내 고충처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허위신고 등 오·남용의 문제도 사내 고충처리제도의 실효성 있는 운영, 오·남용에 대한 제재 조치 등의 방지책 마련으로 일정 수준 해소가 가능하다.

지난해 6월 한국노총 조합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공부문 괴롭힘 경험 비중이 71.2%로 민간부문 59.3%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도 공공부문의 직장 내 괴롭힘 분쟁 해결과 관련해 사내 고충처리시스템을 재정비하고 분쟁발생 시 실질적인 사후조치가 이뤄졌는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안성희

선진노무법인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