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서방과 러시아간 수감자 맞교환 막전 막후

2024-08-09 13:00:05 게재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수감자 맞교환이 이루어졌다. 미국 독일과 러시아가 1일 냉전 이래 최대 수감자 교환을 단행했다. 미국 및 유럽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자국민 보호 등의 정치적 목표 아래 1년이 넘는 복잡한 물밑협상을 거쳐 24명 수감자를 교환한 것이다.

미국 러시아 독일 정상은 수감자들이 자국 공항에 도착할 때 직접 맞이할 정도로 정치적 중요성을 부여했다. 미국은 자국 외 나토동맹의 4개국 독일 슬로베니아 노르웨이 폴란드에서 수감 중인 러시아 형사범 8명을 모스크바로 돌려보냈다. 러시아는 자국과 벨라루스 내 수감자 16명을 석방했다. 서방으로 석방된 16명은 미국인 3명, 독일인 5명과 함께 러시아 반체제 인사 8명이 포함된 점이 특이하다.

협상은 2021년 6월 제네바 정상회담 당시 수감자 해결 채널가동 합의로 시작됐지만 우여곡절을 겪었다. 러시아는 2022년부터 첩보요원 이자 푸틴의 경호부서 소속원이었던 크라시코프를 교환대상으로 제안했다. 그는 2019년 베를린 공원에서 체첸 반군 사령관을 총격 살해한 후 독일 당국에 의해 체포돼 종신형 복역 중인 형사범이라 독일정부가 석방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러시아는 3월 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에반 게르시코비치를 취재활동 중 간첩죄로 구금하고 7월 유럽 자유방송 기자도 체포, 교환대상을 늘려 나가면서 압박했다.

러시아 트럼프 당선 전 협상 마무리 원해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형사범 석방 요청을 받고 고심했다. 무고한 민간인 구출을 위해 청부 살인 공작원을 석방할 경우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거라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정부는 러시아 전문 살인범을 내주려면 등가의 명분이 필요했다. 숄츠 총리는 크라시코프 석방 조건으로 나발니와 러시아 내에 구금된 독일인 5명을 포함시키며 독일 정보기관도 협상에 참여토록 했다.

협상타결 시점은 러시아에서 나왔다. 러시아는 독일과 협상시 11월 미 대선 전에 협상을 마무리 짓기를 원한다고 했다. 독일이 보기에 러시아는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까 우려했다는 것이다.

2월 중순 핵심 교환대상인 나발니의 돌연사로 협상이 난항에 빠지는 듯 했지만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나서 독일과 슬로베니아 총리를 설득해 협상기조를 유지했다. 반체제 인사로서 퓰리처상을 받은 영국계 러시아 정치 칼럼니스트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를 추가한 최종 교환명단 합의가 6월에야 이루어졌다.

이번 교섭은 유럽 국가들의 긴밀한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독일뿐만 아니라 폴란드 노르웨이 외무장관도 자국 내 러시아 형사범을 인도해 준 것은 동맹관계 중시와 신뢰에서 나온 결정이라고 했다.

이번 교환 사례는 세가지 도전과 시사점을 준다. 우선 무고한 국민과 범법자 간 교환을 요구하는 사례의 재발 가능성이다.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나 분쟁지역에서 이러한 수법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무고하거나 사소한 위반을 한 외국인들을 체포 구금해 이를 협상카드로 쌓아 놓고 공정한 법과 명백한 증거에 의해 처벌받은 범죄자들과 교환을 요구할 경우 대비책이 필요해진다.

3년 전 캐나다정부가 주도한 ‘국가관계에서 자의적 구금 반대선언’이 우리나라 포함 78개국 지지로 채택되고 국제 패널이 설치됐다. 분열 대립이 늘어난 국제정세에서 이런 위험사례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 국민들에게 여행 사업 거주시 경각심을 높이는 한편 국제협력을 통한 대처방안도 협의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구금 중인 자국민 귀환 문제다. 미국인 20여명, 독일인 30여명이 아직 러시아에 남아있다. 우리의 경우 지난 3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당국이 주장하는 간첩 혐의로 구금된 선교사 사례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 대러시아 대화 채널과 우방국 협조를 통해 조기석방될 수 있도록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외교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수감자 맞교환이 주는 시사점

마지막으로 이번 교환이 미러 관계에 돌파구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회담을 촉진하는 예비적 신호는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러 정부 인사들은 단지 국익 원칙에 따른 거래가 이루어졌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크렘린이 전쟁으로 냉혹하고 무자비해 보이지만 상호이익의 관점에서 타협을 위해 교섭하고 양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도 동맹국들과 단합과 이익균형을 통해 필요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러시아 관계 관리와 동맹국 협조시 고려할 점이다.

박노벽

전 러시아·우크라이나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