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형사절차가 지향하는 두 이념
형사절차는 진실을 밝히고 그 진실이 범죄에 해당하는지 증거로 판단하는 과정이다. 수사기관은 진실을 밝혀서 관련자를 처벌하려고 하지만 형사절차에서 진실을 밝혀서 처벌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선 진실을 밝히기 어렵다. 과거의 일이고 인간의 인식능력과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 진실을 다르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진실을 축소·왜곡하거나 은폐·조작하기도 한다. 밝혀진 진실이 범죄에 해당하는지 판단도 쉽지 않다. 이는 사람의 행위에 대한 유·무죄의 판단인데 행위의 상황과 의도에 따라 그 행위가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고 이를 처벌하는 형법규정이 매우 다양하며 해석관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밝혀진 진실이 범죄에 해당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다.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따라야 하고,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이 필요하다(형사소송법 제307조). 그래서 흔히 법률가들이 조사를 받을 때 자신의 행위가 진실일지라도 증거가 없거나 숨길 수 있다면 그런 행위 자체를 아예 부정한다.
밝혀진 진실이 범죄에 해당하고 증거가 있을지라도 그 증거가 형사절차에서 지켜야 할 원칙을 어기고 얻어진 것이면 효력이 없다. 형사절차는 수사 기소 재판의 순서로 이루어지는데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이 이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 범죄의 수사와 기소를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 대체로 형사소송법에 정해져 있다.
진실주의 아닌 절차주의가 시대흐름
자신의 범죄사실을 자백하는 진술을 수사기관이 받아냈고 이 자백은 진실이다. 그런데 만일 이 자백이 수사기관의 고문이나 폭행·협박 또는 회유·압박으로 인해 나온 것이면 그 자백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자백을 받아 낸 방식이 옳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에 사용한 칼을 범인이 자신의 집에 숨겨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사기관이 그 집에 몰래 들어가서 그 칼을 가지고 나왔다면 그 칼은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그 칼은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범인의 집일지라도 수사기관이 그 집에 들어가서 칼을 가지고 나오려면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
형사절차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은 진실의 발견일까, 적법절차의 준수일까. 수사기관은 흔히 형사절차의 목적을 진실 발견에 무게를 두고 이 진실을 ‘실체적 진실’이라고 부른다.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또 처벌을 받아야 하는 곧 실체가 있는 진실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적법절차를 어기면서 밝힌 실체적 진실은 처벌할 수 없는 진실이므로 수사기관은 적법절차를 지키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런 진실을 흔히 ‘절차적 진실’이라고 한다. 수사기관은 실체적 진실이 아니라 절차적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사건 처리에서 진실주의가 아니라 절차주의가 시대적 흐름이다.
“조사할 게 있으니 나와 주세요”라는 수사기관의 전화를 받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몸이 긴장되면서 당황하고 ‘내가 뭘 잘못한 것일까’ 자문하고 자책한다.
범죄혐의가 있다는 수사기관의 의심을 받는 사람을 흔히 피의자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종종 뜻밖의 일로 피의자가 되어 형사절차에 휘말리는 고통을 겪는데 그 고통이 작지 않다. 유죄가 확정되어 받는 처벌의 고통은 일회적이지만 형사절차에 연루되어 겪는 절차적 고통은 지속적이다.
처벌의 고통을 실체적 고통이라고 부르면 오히려 절차적 고통이 실체적 고통보다 크다. 실체적 고통에 이르는 과정에서 절차적 고통은 불가피하고 형사절차에서 진실이 밝혀져서 무죄로 인정되더라도 절차적 고통은 남는다. 기소만 되더라도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는 무죄판결이 확정된 자에게 재판에 소요된 비용만 보상한다.
절차 불공정성 그 자체로 실체적 진실 훼손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출장조사’로 정치권의 논란이 거세다. 여기에 영등포경찰서의 마약수사에 대한 외압의혹까지 더해졌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적법절차에 대한 외부적 개입의 의심과 이로 인한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다. 절차에 대한 외부 개입의 목적은 절차적 고통의 원천적 회피 내지 완화에 있다.
수사기관이 준수해야 하는 적법절차의 흠결이나 외부 개입은 진실이 밝혀져서 무죄로 인정되더라도 그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한다. 절차의 불공정성이 실체적 진실을 훼손한다.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