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전기차 조례 서둘러…강제성 없어
‘전기차충전소 지상 설치’ 골자
상위법 근거 없어 권고에 그쳐
인천 아파트 전기차화재 이후 지자체들이 잇따라 관련조례 제·개정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충전소에 안전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지상에 위치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이 같은 조례들은 상위법에 근거가 없어 강제규정이 아닌 권고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13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에서는 지난해 10월 제정한 ‘서울시 전기자동차 전용주차구역의 화재 예방 및 안전시설 지원에 관한 조례’가 올해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조례는 전기차 전용주차구역에 대한 효과적인 화재 예방 및 대응을 위해 물막이판, 질식소화덮개, 감시용 열화상카메라, 충수용 급수설비, 상방향 직수장치 등에 대한 설치기준을 담고 있다. 이러한 안전시설을 설치할 경우 예산의 일부 또는 전부를 서울시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번에 지하주차장 전기차화재가 발생한 인천에서도 전기차 관련 조례를 시행 중이다. 신동섭 인천시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조례는 지난해 제정돼 올해 3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조례에는 인천시장이 설치 관계인에게 개방된 지상주차장에 전용주차구역 및 충전시설을 설치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충전 중 배터리 정보 수집과 충전 제어가 가능한 충전시설을 설치하도록 권고하는 내용까지 담겼다. 서울시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경우 인천시가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경북과 충남 경남에서도 최근 전기차 안전 확보를 위해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에 설치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으로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 대구시 등 다른 지자체들도 관련 조례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서울시와 충남도는 ‘공동주택 관리규약 준칙’ 개정에도 나섰다. 개정안은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90% 이하로 충전한 전기차만 출입할 수 있도록 권고하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들 조례·규칙에 담긴 안전기준이나 설치기준 등은 상위법에 근거가 없어 강제규정이 아닌 ‘권고’ 수준이라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률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충북도는 전기차 충전설비를 옥외에 설치하고 변전실 등 필수설비와 10m 이상 떨어뜨리도록 하는 내용의 전기차 충전기 설치 안전기준(안)을 마련해 행정안전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건의하기도 했다. 한 광역지자체 관계자는 “상위법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지자체가 안전기준을 강화하기는 쉽지 않다”며 “정부와 국회 차원의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최근 가파르게 늘어난 관용 전기차 안전관리에도 골몰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관용 전기차를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일부 단체장들은 의전용 관용차까지 전기차 등 친환경차로 교체했다. 지난 2016년 도입된 ‘공공기관 친환경차 의무구매제도’에 따라 관용 전기차 수는 급속하게 늘어났다. 특히 지하주차장에 충전시설이 있는 지자체들은 더 마음이 급해졌다. 한 기초지자체 관계자는 “우선 급한 대로 관용 전기차를 지상공간에 주차하도록 했고 충전도 지상 충전기를 이용하도록 했다”며 “충전시설을 지상으로 옮기는 등 근본적인 조치는 관련 예산을 확보한 뒤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도 전기차화재 관련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행정안전부 정부청사관리본부는 최근 정부청사 전기차 충전기 확충 계획을 긴급히 변경했다. 청사관리본부는 당초 올해 5억2400만원을 들여 정부세종청사에 50기, 그 외 지방청사에 50기의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할 예정이었다. 세종청사는 지하, 나머지 지방청사는 지상에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최근 전기차 화재가 잇따르자 세종청사 지하에 설치하기로 한 충전기를 지상에 설치한다.
다만 공간이 부족해 당초 설치하려던 50기에서 12기로 충전기 규모를 축소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