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날리는 불꽃…무더위·시름 잊는다
성북구-사찰 손잡고 ‘낙화놀이’ 재현
다문화가정·지역사회 화합기원 의미
“우와~ 신기하다.”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화려하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저녁 8시가 지나고 거리에 어둠이 깊어질 즈음 서울 성북구 삼선동 성북구청 뒤편 바람마당 인근이 들썩인다. 은은한 국악 연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승로 성북구청장 등이 횃불을 들고 성북천 위쪽에 매달린 낙화봉에 불을 붙였다. 빨갛고 노란 불꽃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후두두둑 움직인다. 타닥타닥 심지가 타 들어가고 불꽃이 흩날릴 때마다 천변에서, 도로변 난간에 기대 지켜보던 시민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진다. 성북천 위쪽에서 불꽃이 날리는 사이 물 위에는 주민들 소원을 실은 조각배가 떠다닌다. 서울 복판에서 재현된 ‘낙화(洛花)놀이’ 현장이다.
12일 성북구에 따르면 지난 9일 행사는 서울 도심에서 펼쳐진 유일한 낙화놀이다. 보문동 보문사에서 고유 명절인 칠석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주민 화합의 장을 만든다는 취지로 판을 벌였다. 구는 주민들이 모이기 수월한 바람마당 일대를 행사장으로 내놨고 이승로 구청장 등이 함께했다.
낙화놀이(洛花遊)는 줄불놀이라고도 불리는 민속놀이다. 추녀 끝이나 강가 절벽 위에 줄을 걸고 뽕나무를 태워 만든 숯가루를 한지주머니에 채워 만든 불씨주머니(낙화봉)를 매달아 불을 붙이면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밤하늘을 수놓는다. 붉고 상서로운 기운이 주민들에게 위안을 주고 이웃과 함께 놀이를 준비하면서 우의를 다진다 해서 정월 대보름과 4월 초파일, 7월 보름 등에 즐겼다.
바람마당에 모인 시민들도 여름밤 불꽃을 만끽했다. 바람을 따라 물결처럼 일렁이고 길게 꼬리를 남기며 별똥별처럼 성북천으로 떨어지는 불꽃을 사진에 담는 손길이 분주했다. 양쪽 끝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이 중간에서 합쳐질 때는 “견우와 직녀처럼 만났다”는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내내 자리를 지킨 정릉동 주민 송희숙(60)씨는 “어려서나 봤던 전통놀이를 오랜만에 구경하니 너무 좋다”며 “무더위도 시름도 다 잊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낙화놀이는 다문화가정과 지역사회 화합을 기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놀이에 앞서 한국 중국 베트남 다문화가정에서 칠석 음식나눔을 준비했다. 중국 만두와 국수, 베트남 쌀국수, 한국 호박전과 밀전병 등이 거하게 차려졌다. 베트남 출신 각려효 스님은 “지난해 음식이 부족했던 것 같아서 올해는 쌀국수와 반미(Banh Mi) 7000인분을 준비했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끝낸 뒤 밤에 모여 음식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성북구와 사찰의 문화 협업은 오는 31일에도 이어진다. 효의 정신을 가족들이 함께 되새기고 민·관이 화합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백중 효 콘서트’를 선보인다. 스트레스가 심한 민원 담당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템플스테이 사찰순례 등도 준비 중이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주민들에게 문화 향유와 힐링의 기회를 제공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다양한 나눔을 실천하는 성북사암연합회에 늘 감사하다”며 “낙화놀이가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행사, 소통과 화합의 장으로 정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