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삼계탕에서 레토르트까지 열처리의 과학
‘복날’이라고 부르는 복(伏)은 가을의 서늘한 기운이 여름의 더운 화기를 두려워 엎드린다는 뜻이라고 하기도 하고, 복(伏)’의 꺾는다는 의미를 강조해 여름 더위를 꺾는 날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 삼복 기간은 닭고기 소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기다. 동의보감에는 닭은 간의 양기를 보충한다는 설명이 실려 있다. 닭은 양질의 단백질로 소고기나 돼지고기보다 가성비는 갑이다. 따라서 서민의 보양식으로 닭이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삼계탕은 여름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먹는 한국의 대표적인 계절음식이다. 닭을 손질한 후 내장을 제거하고 인삼 찹쌀 대추 마늘 황기 등을 넣은 후 닭다리를 묶어 내용물이 나오지 않도록 해 오랜 시간 물에 삶는 보양음식이다. 여기에 삼까지 넣고 보양식으로 재탄생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방식이다. 보양식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플랙스(flex) 아닐까.
삼계탕은 재료 모두 일일이 손질하기도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따라서 대부분 외식으로 해결한다. 한편 레토르트 삼계탕을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는 고온고압으로 살균되어 개봉해 쉽게 조리해 먹는 즉석제품(ready-to-eat, RTE)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RTE는 카레다.
내열성 포자는 레토르트의 타깃
레토르트는 증류를 위한 초자기구였다. 하지만 파스퇴르가 미생물에 의한 식품의 부패와 이를 막는 살균방법의 실마리를 증명한 실험에 이 기구를 사용하므로써 레토르트가 고온고압살균 방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바뀐 것 같다. 고온고압살균은 물을 고압으로 가열할 때 끓는 점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는데 121.1℃(약 250℉) 대기압 이상에서 15분 이상 가열한다.
몇몇 세균은 자신이 좋아하는 온도 수분 영양 등의 조건이 맞지 않으면 딱딱한 껍질을 만들고 자신의 유전자를 보호하다가 적절한 환경에서 다시 번식하는 데 이를 포자라고 한다. 이와 대비해 보통의 세균세포를 영양세포라고 한다. 대부분 포자는 높은 열에도 잘 견디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포자를 없애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통조림도 레토르트 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통조림은 식품산업에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으나 초반에 통조림 식품을 먹고 식중독에 감염되어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이 원인이 바로 클로스트리디움 보튤리눔(Clostridium boulinum) 독소감염이었다. 이 세균은 내열성이 강한 포자를 형성하는데 살균처리 이후에도 살아남아 통조림 내에서 영양세포로 자라나 독소를 형성했다. 그래서 이 균이 1㎖ 용적 안에 들어갈 최대의 포자 수가 모두 사멸할 수 있는 온도와 살균시간을 설정한 것이 레토르트의 살균조건이 된 것이다. 모든 균이 열 사멸이 된 무균상태이기 때문에 이 경우 멸균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왕이면 모든 균을 죽여서 유통하는 것이 안전하리라 생각하겠으나 과도한 열처리는 식품의 조직 색 향기 영양소까지 파괴하기 때문에 감각적인 기호가 무시할 수 없는 식품에서는 상품성이 떨어질 수 있다. 즉 식품으로서의 가치와 안전성의 사이에서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식품은 pH 4.5에서 pH 7은 약산성, pH 4.5 이하는 강산성으로 나누게 되고 pH 4.5를 기준으로 열처리 기준을 달리한다. 강산성 식품들은 열처리를 100℃ 부근이나 이하, 약산성 식품들은 120℃까지 고온으로 처리한다. 산이 많으면 세균은 생육이 어려우므로 굳이 높은 온도로 처리해 식품품질을 변하게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식품학 지식의 결정체 레로르트 식품
레토르트 파우치의 포장재는 다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식품과 접촉하는 층은 폴리에틸렌이나 폴리프로필렌을 사용하고 중간층은 공기나 빛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알루미늄박이나 합성수지를 사용하며 외층은 폴리에틸렌테레프탈레이트나 나일론을 사용해 충격이나 열에 견디도록 한다. 식품산업 분야에서 살균조건 설정은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전처리, 살균공정, 그리고 포장까지 고려해야할 많은 변수가 있기에 레토르트 식품 분야는 식품학 지식의 결정체와도 같다.
삼계탕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살균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의 여정은 여기서 마치자. 매년 이것이 과연 현실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끔찍한 폭염도 마지막 복날이 지나면 어느덧 수그러들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찾을 수 없는 플랙스한 인삼을 넣은 보양식을 한그릇 하고 찬연한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길.
김기명
전 호남대 교수, 식품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