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국가에 손 내미는 브릭스(BRICS)
태국과 말레이시아, 브릭스 가입 신청 … ‘아세안 중심성’ 흔들릴까 우려의 목소리도
아세안의 매력이 브릭스(BRICS)를 움직이게 한다. 동남아 국가들을 회원으로 유인하기 위한 브릭스의 구애 외교가 본격 가동되고 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지난 6월 올해 브릭스 의장국인 러시아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 등 다른 아세안 회원국들도 브릭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를 계기로 아세안 회원국 내부에서 전문가 그룹을 중심으로 가입 찬반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찬성 편에서 제시하는 논리는 신흥 시장으로 경제 다변화를 실현하여 무역 투자 금융 등 실질 분야에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동시에 지경학·지정학 측면에서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여 국가 위상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반면, 회의론자 진영은 브릭스 가입을 꿈꾸는 국가들을 중·러의 궤도로 끌어들일 위험을 경계하면서 아세안의 단결 유지와 중심성 강화가 아세안 회원국 전체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하며 아세안 공동체 청사진 실현을 통해 성장 동력을 계속 창출하고 역내 경제 통합을 촉진·심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도네시아, 오이씨디 가입에 주력키로 = 한편, 동남아의 2대 경제 대국인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당초 브릭스와 오이씨디(OECD) 가입을 동시에 저울질하였으나 태국의 경우 오이씨디 가입 협상에 소요될 장시간을 감안해 당장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고 결론짓고 브릭스 가입부터 먼저 하기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오이씨디 가입의 엄격한 경제구조 개혁 조건 이행이 가져다 줄 개혁성과를 고려하면 오이씨디 가입이 더 타당하고 올바른 선택이라고 판단하여 오이씨디 가입 협상에 주력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브릭스 가입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그들의 이웃 국가들이 뒤따를 것인가? 브릭스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나? 하는 이슈들이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의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브릭스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및 남아공의 준말(acronym)로 2006년 브릭(BRIC)으로 결성되었으며 그 후 2010년 남아공이 가입하면서 브릭스(BRICS)로 재명명됐다. 브릭스는 회원국 간에 경제, 정치 및 문화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결성됐다. 금년 초 브릭스 회원국은 이집트, 이디오피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및 아랍에미리트(UAE)를 포함해 10개국으로 확대됐다(브릭스+). 40개 이상 나라들이 브릭스 가입에 관심을 표시했다고 한다. 브릭스 출범 무렵에는 중국이 동 그룹을 주도하였으며 무역 증가는 중국 중심이었다. 그 후 인도에 의해 촉발된 무역 증가로 동 그룹은 경제 성장 가속화를 구가하였다. 작년 확대된 브릭스(브릭스+)는 전 세계 인구의 45%, 글로벌 무역의 25%, 글로벌 GDP의 28%, 글로벌 석유 생산의 40%, 세계 면적의 30%를 차지했다.
◆다극세계질서가 자국에 ‘이익’ 판단 =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왜 브릭스에 가입하기를 원하는가? 태국은 브릭스 회원 가입으로 신흥국의 리더로서 태국의 역할을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선진국 및 개도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공동의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을 강화하면서 공정과 평등을 고양시키기 위한 지구촌 공동체 발전에 관심을 두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브릭스 가입이 무역 및 투자 등의 실질 경제 분야에서 신흥 경제들과 협력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보며 여기에 더해 말레이시아는 이를 점증하는 다자주의 관여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본다.
또한 브릭스 가입은 ‘다극세계질서’형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훨씬 규모가 커질 브릭스는 글로벌 사우스로부터 더 큰 집단적 목소리를 의미할 것이다.
다른 한편, 동남아 국가들의 브릭스 가입은 동남아 자신의 다자 프레임워크인 아세안의 단합과 중심성에 부담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세안은 회원국들이 다른 기구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아세안이 계속 유의미하게 남아있기 위해서는 상황 변화에 적응할 필요가 있겠다.
더 큰 브릭스는 세계에 무엇을 의미할까? 브릭스의 확대는 ‘글로벌 사우스’ 의 목소리를 증폭시킬 것이며 이미 양극화 된 세계를 더 분열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 같아 보인다. 금년 1월 확대된 브릭스는 고조된 글로벌 양극 체제 경쟁에 대한 직접적 반응이다. 이 경쟁은 글로벌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훨씬 더 심대하게 증가시켰으며 어떻게 중견국들이 초강대국들 간 긴장 속에서 묘책을 강구하는 지를 보여준다.
특히, 러시아의 동 그룹 관여 확대와 함께 더 많은 국가의 동 그룹 참여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문제가 많은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왜냐하면 회원국 확대는 서방의 이익과 가치에 적대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동맹서 전략지정학적 플렛폼 진화 = 오이씨디냐 브릭스냐를 둘러싸고 아세안 핵심 회원국들간 이견은 아세안 단합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세안의 3개 핵심 창립 회원국-인도네시아, 태국 및 말레이시아-은 각자의 개별 국제 파트너십을 넓히기 위해 상이한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금년 2월에 인도네시아가 오이씨디 가입 신청을 했으며 오이씨디는 5월에 인도네시아 가입 신청서 검토에 착수했다. 태국은 4월에 오이씨디 가입 신청을 하고 또한 6월에 브릭스 가입 신청을 했다.
이들 3개 아세안 회원국이 그들의 국제 파트너십을 넓히기 위한 조치는 그들의 경제적 지위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가장 최근 IMF 통계에 의하면 말레이시아의 1인당 GDP는 1만2570달러, 태국의 경우는 7337달러,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4942달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말레이시아가 오이씨디 회원 자격에 훨씬 가까워 보인다. 반면, 인도네시아의 지위는 브릭스와 더 대등하게 연동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왜 인도네시아는 브릭스가 아니고 오이씨디 가입을 선택했을까?
인도네시아는 브릭스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일부 회원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있다고 본다. 인도네시아의 오이씨디 가입 추진 배경으로 첫째, 글로벌 투자처 및 공급망의 일부로서 지위를 고양시킬 수 있으며 둘째, 경제개혁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정책을 들 수 있다.
한편, 말레이시아가 오이씨디 대신 브릭스 가입 추진을 선택한 것은 경제 파트너십을 다변화 하고 미 달러화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려는 전략적 필요성에 연유한다. 브릭스는 경제 동맹으로 시작하여 점차 중대한 ‘전략지정학적(지정학에 바탕을 둔 전략) 플렛폼’으로 진화했으며 말레이시아에 호소력을 부여하고 있다.
태국은 오이씨디와 브릭스 둘 다 가입을 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이씨디는 현재 가장 큰 시장을 대표하며 브릭스는 잠재적으로 큰 미래 시장에 대한 접근 기회를 부여한다. 상기 3개국은 지속적으로 중립외교를 옹호해 왔으나 각자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계산으로 이루어진 개별적 선택은 역사에 뿌리를 둔 특유한 ‘외교적 DNAs’를 보여준다.
◆브릭스 가입 놓고 찬반논쟁 벌어지기도 = 여기서 브릭스 가입 찬반 지상 논쟁을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반대론자인 태국 출라롱컨 대학의 티티난(Thitinan) 교수는 지난 6월 방콕 포스트 기고(‘태국의 브릭스 가입 움직임은 잘못됐다’)를 통해 태국이 브릭스 가입을 서두르는 주요 이유는 다른 분야에서 뚜렷한 정책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빠른 성과물을 선보일 수 있는 국내용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그의 주장은 “태국의 브릭스 가입 추진은 잘못되었고(misplaced) 태국의 국제적 지위와 신뢰에 부채를 안겨준다. 오이씨디 가입 협상을 완료하기까지는 수년이 더 걸릴 것이지만 오이씨디 가입이 더 타당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비라(Veera) 미디어 컨설턴트는 지난 7월말 말레이시아 더 스타지 기고(‘브릭스는 말레이시아가 가야할 길’)를 통해 말레이시아의 브릭스 가입은 경제 다변화와 글로벌 영향력 확보를 위한 대담한 발걸음이라고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브릭스 가입의 타당성을 주장했다.
즉 “브릭스가 세계의 세력균형을 훨씬 더 다극체제로 변경시키고 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바로 지난주 브릭스는 스위프트(SWIFT)에 대적할 그 자체의 ‘금융메시징시스템’을 발표하였다. 이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이다. 브릭스 가입은 말레이시아와 지역을 미국 금융정책의 독주와 변덕, 달러화의 변동성으로 부터 효과적으로 방패막이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10월 러시아 카잔 정상회의서 가입 결정 = 브릭스의 경우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회원으로 가입하는데 직면할 장애는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러시아 같은 브릭스의 주도적 회원국이 중요한 의사결정 권한을 보유하고 있고 명료하지 않은 회원 조건 및 절차로 이들 두 나라의 가입 신청은 빠르면 금년 10월 러시아 개최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승인될 수도 있을 것이다.
브릭스의 확대는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를 한층 더 증폭시킬 것이다. 우리는 전 지구에 걸쳐 포진할 글로벌 사우스 회원국들과 돈독한 양자 관계를 십분 활용하여 글로벌 사우스에서 우리 외교력을 신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인도네시아와 태국이 오이씨디와 본격적인 가입 협상을 벌리게 되면 우리의 오이씨디 가입 협상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함으로써 우리의 전통 우방인 이들 국가와 다층적, 다면적, 다차원적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해문
전 태국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