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쪼개진 광복절, 역사마저 내어주려는가
제79주년 8·15 광복절이 두 동강 났다. 정부 주최 경축식과 독립운동단체의 기념식이 별도로 개최됐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임명 논란으로 불거진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사 분열을 넘어, 대한민국 정체성과 역사 인식에 대한 갈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김 관장은 뉴라이트 인사로 비판받고 있다. 김 관장 임명에 반대하는 광복회와 독립운동단체들, 역사학계, 정치권까지 임명철회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독립운동단체들은 이번 일이 단지 독립기념관장 한 명의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기고문을 통해 뉴라이트 인사들이 역사, 교육, 언론관련 기관들의 수장을 꿰차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예로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국사편찬위원장, 독립기념관장, 국가교육위원장, 방통위원장 등을 꼽았다.
이종찬 광복회장도 “단순한 하나의 인사가 아니라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계획”이라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독립운동 단체는 물론 야권과 역사학계까지 반대하는 인사를 임명 강행하는 것은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현정부 출범 이후부터 줄곧 보여준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까지 겹치면서 더 큰 의혹을 부르고 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묵인, 사도광산 강제노동 부정 용인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학계와 독립운동단체들의 요구는 냉정하게 외면하면서 일본의 역사 왜곡과 횡포에는 지나치리만큼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15일 자체 기념식에서 “한 나라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이 흔들리면 국가의 기조가 흔들린다.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버젓이 활개 치며, 역사를 허투루 재단하는 인사들이 역사를 다루고 교육하는 자리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면서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다. 자주독립을 위한 선열들의 투쟁과 헌신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성과를 폄훼하는 일은 국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광복절인 8월 15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각료, 국회의원들이 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공물료(料)를 내거나 참배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근 일련의 일들이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대사가 요즘 들어 자주 소환된다.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라는 구절이다. 두 쪽 난 광복절을 경험한 우리 상황에 딱 맞는 경고다. 지금 우리는 피로 쓴 역사마저 스스로 내어주고 있지 않은지 물어봐야 할 때다.
정재철 외교통일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