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갈수록 거칠어지는 윤 대통령 광복 경축사 ‘보수결집용’?

2024-08-16 13:00:08 게재

북 체제흔들기 집중한 ‘통일 독트린’…야권 겨냥 “검은 선동세력”

태도변화 없는데 일제·역사문제 언급 급감, 일본 언론도 “이례적”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가 취임 이후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일제잔재청산·남북화해·사회통합 같은 기존의 문법을 거부한 채 해가 갈수록 대북 압박, 내부 투쟁으로 기우는 모습이다. 보수지지층에 착근하지 못한 윤 대통령이 외연확장 대신 지지층 결집을 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담대한 구상’ 구체화했지만 = 윤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새 통일 담론인 ‘8.15 통일 독트린’이었다. 2년 전 경축사에서 언급한 ‘담대한 구상’을 구체화한 것.

그러나 윤 대통령이 제시한 방법론은 통념과 달랐다.

그는 먼저 ‘거짓선동’에 맞선 내부투쟁으로 국내적 차원의 자유통일 추진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가짜 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라며 “사이비 지식인들은 가짜 뉴스를 상품으로 포장하여 유통하며, 기득권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권과 비판·비난세력을 겨냥한 표현으로 읽힌다. 그는 이어 ‘사이비 지식인’과 ‘검은 선동세력’을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이라고 지칭하고 “우리 국민들이 진실의 힘으로 무장해 맞서 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북한과도 협력보다 ‘변화’에 초점을 맞춰 북한의 현 지배체제를 동요시키는 방안을 대거 제시한 후 “이러한 노력들과 함께, 남북대화의 문은 활짝 열어놓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인권 국제회의 △북한 자유 인권 펀드 △북한 주민 정보접근권 확대 △탈북민 보호 지원 강화 등을 나열하고는 “남북 당국 간 실무차원의 ‘대화협의체’ 설치를 제안한다”며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북한 당국의 호응을 촉구한다”고 했다.

일본과의 역사문제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일본에 대한 언급은 “작년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고, 2026년 4만 달러를 내다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격차는 역대 최저인 35억 달러를 기록했다” 단 두 문장에 그쳤다.

일본정부의 태도변화는 목격되지 않는 가운데 현지 언론마저 의아해 하는 모습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한국 대통령 연설에 일본 비판 없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에서는 역사 문제 등을 둘러싼 대일 비판을 담는 사례가 많았으나 대일 관계를 중시하는 윤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작년에 이어 일본 비판이 전무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광복절 연설에서 일본과 관련한 생각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보수결집 효과도 의문” = 윤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지난 두 번의 경축사와 비교하면 갈수록 경색돼가는 모습이다. 광복·독립의 개념을 확장시킨다는 흐름은 일관되지만 내용이 ‘산’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윤 대통령은 2022년 경축사에서 “일제 강점기에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며 국내외에서 무장투쟁을 전개하신 분들, 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면서 무장독립운동가를 길러내신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고 벅차오른다”고 했다. “우리의 헌법질서는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위대한 독립정신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일본은 이제 함께 힘을 합쳐 나가야 하는 이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경축사 때부터 일본에 대한 언급은 줄이는 대신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며 내부투쟁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의 경축사가 갈수록 대북·남남투쟁에 경도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에 대해 ‘보수결집용’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전통 보수층에 착근하지 못한 채 임기 3년차를 보내고 있는 윤 대통령이 외연확장보다는 내부 결집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고 풀이했다. 그는 “보수층 내에서도 ‘김건희 여사 특검’ ‘채 해병 특검’ 거부 등을 놓고 윤 대통령에 대한 불신이 깊다”며 “지금같은 메시지 전략만으로 결집효과를 얼마나 거둘지는 의문”이라고 봤다.

◆대통령실 “한일관계 자신감 내비친 것” = “기괴한 대통령(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망상(허은아 개혁신당 의원)” 등의 지적이 보수진영 내에서도 나오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15일 “오늘 연설은 대한민국이 그동안 자유 가치를 기반으로 꾸준히 경제 성장을 해오며 일본과 대등하게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는 함의가 있다”며 “한일 관계를 지적하지 않았지만, 한일 관계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고위관계자는 “우리 청년과 미래세대는 일본 여행을 하고 일본 청년과 교류와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며 “과거사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지적하고 개선해 나가야 하지만, 우리가 더 크게 되고, 더 큰 미래를 바라보며 국제사회 환영을 받으며 일본 협력을 견인해 나갈 때 그것이 진정한 극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윤 대통령이 25분간 한 연설의 분량은 5700여 자로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3700여자)보다 훨씬 길었다. ‘자유’라는 단어가 총 50회 등장해 지난해 경축사(27회), 2022년 경축사(33회)와 비교하면 대폭 늘어났다. 이어 통일(36회), 북한(32회), 국민(25회) 등이 많이 언급됐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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