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대신 노동허가제 도입해야”

2024-08-19 13:00:01 게재

‘고용허가제 20년’ 증언대회 … “사업주 권리만 강화,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박탈 제도”

“농작물 수확량이 줄었다며 3개월치 임금을 주지 않았다. ‘하루 10시간씩 일하라’고 강요하고 ‘수당은 주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월급은 절반만 주더니 해고했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도 불법체류상태가 되지 않으려고 오히려 사장에게 사정해야 했다.”

캄보디아 출신 팀 짠나(24)가 한국에서의 3년 3개월은 고난과 눈물의 연속이었다.

고용허가제 시행 20년을 맞아 민주노총과 이주노조 이주노동자평등연대가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12층 회의실에서 ’무권리 강제노동, 차별과 착취 피해 이주노동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차별과 착취 피해 이주노동자 증언대회’ 1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고용허가제 20년, 무권리 강제노동, 차별과 착취 피해 이주노동자 증언대회’에서 여성노동자 짠나씨가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농업 노동자로 입국한 짠나는 월세 15만원 2인 1실 숙소에서 왕복 90분 거리를 출퇴근하며 대전의 오이·상추 농가에서 일했다. 작황이 좋지 않자 월급이 2~3개월 밀렸고 짠나는 1년 1개월 만에 고용계약을 해지됐고 일터를 옮겨야 했다.

구직시한 3개월이 끝나기 직전에 가까스로 구한 새 직장은 경기 양평의 버섯공장이었다. 무거운 버섯판을 옮겨야 하는 고된 일에도 “할 수 있어요”라는 말만 반복하며 버텼지만 공장은 10개월 만에 폐업했다.

또다시 피 말리는 3개월의 구직 노력을 거친 뒤 지난해 11월 충남 금산 깻잎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사장도 일 잘하는 짠나를 좋아했지만 짠나의 3년 비자 만료 시기가 다가오자 사장은 근로계약서와 다르게 추가수당도 없이 하루 10시간 근로를 강요했다. 막판엔 약속한 금액의 절반 정도인 110만원 남짓의 월급만 줬다.

비자 기간을 1년 10개월 더 연장하고 싶은 짠나는 묵묵히 일하는 수밖에 없었으나 비자 만료 일주일 전 사장은 일방적으로 짠나를 해고했다. 일자리를 잃으면 곧바로 귀국해야 하는 데다 고향의 아픈 엄마 치료비도 막막했던 짠나는 사장에게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울면서 호소해야 했다.

지원단체 등의 도움으로 미등록 상태가 되는 것은 피했지만 짠나는 “왜 잘못이 없는 노동자는 불법체류자가 되고 월급도 제대로 안 주는 사장은 저를 불법체류자로 만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사장은 한국의 나쁜 법을 이용해 나와 같은 이주노동자를 괴롭혔다”고 증언했다.

우리나라는 1994년부터 산업연수생제를 통해 비전문 외국인력 활용을 시작했다. 하지만 송출비리 및 불법체류 인권침해(연수생 신분) 등 사회문제로 제기됐다. 2004년 8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정되고 고용허가제가 시행됐다.

고용허가제는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업 등의 비전문 일자리에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한 사업장이 외국인력(E-9, H-2 비자)을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다. 고용허가제 근로자들의 사업장 변경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최초 3년간 3회, 추가 1년 10개월간 2회에 한해 허용이 된다.

네팔 출신 찬드 바하두르는 올해 1월부터 경기 이천 한 건설 부품업체에서 일하다 4월 허리를 다쳤다. 사장이 병원에 데려가 주지 않아 어렵게 찾아간 병원에선 ‘요천추(관절·인대) 염좌 및 긴장’ 진단과 함께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찬드는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지만 사장은 “네팔로 보내버리겠다”고 협박하며 거부했다.

찬드는 “이천고용복지플러스센터도 사장과 얘기하라고만 하고 법적으로 사업장 변경이 3번 가능하지만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면서 “몸에 계속 증상이 있어 전문의 소견을 다시 받았더니 ‘기타 명시된 추간판 장애’로 ‘증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무거운 물건을 드는 등 심한 육체활동을 제한해야 하는 상태’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농장에서 일하기로 계약한 이주노동자를 임의로 흑염소 식당에서 일하게 한 불법파견 사례, 여성노동자에게 남성과 기숙사 같은 방을 쓰라고 한 사례, 여성노동자의 성추행 사례, 선원노동자(E-10)의 이탈보증금, 여권 및 신분증, 통장 압류, 브로커 개입으로 노동자를 착취한 사례 등도 증언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고용허가제는 사업주 권리만 강화하고 이주노동자의 인권이나 노동권은 박탈한 제도”라며 “강제노동을 강요하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는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정우 민주노총 미조직전략실장은 “윤석열정권이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을 삭감하면서 전국의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가 존폐위기에 처했다”며 “사회적으로 이주노동이 늘어나지만 정부는 되려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증언대회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영어 구호를 입을 모아 외쳤다.

한남진 연합뉴스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