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업계 매출 증가 추세 꺾이나…혹한기 대비 긴축경영
경기침체로 기업 경영자문부문 일감 줄어 타격
경영 어려워지면서 감사 시장에서 덤핑 수주 경쟁
신입 회계사 채용도 줄여, 올해 취업 시장 한파 예고
회계업계가 경기 침체 여파로 인수·합병(M&A)과 컨설팅 등 경영자문부문 일감이 급격히 줄면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던 매출이 올해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9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일부 중견 회계법인은 올해 3월말 결산 과정에서 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시된 자료에는 상여금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적자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파트너들에게 지급할 상여금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등 내용적으로 적자가 났다는 것이다.
중견회계법인 중 가장 큰 규모의 삼덕회계법인은 지난달 발표한 2023회계연도(2023년4월~2024년 3월)에서 당기순이익은 3억6000만원을 기록했지만 36억원의 영업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매출액은 1708억원으로 전년(1771억원) 대비 63억원 감소했다. 급여 지급액은 1211억원으로 전년(1242억원) 대비 31억원 줄었다. 회계업계의 전반적인 인건비 상승에 따라 급여 지급액을 크게 줄이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매출 감소폭이 커지면서 영업 적자가 발생한 것이다.
다른 중견회계법인의 한 파트너 회계사는 “이달 들어 법인 내부에 자금 부족 현상이 벌어지는 등 회계법인의 경영 상황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회계법인들의 매출 증가 추세도 멈추고 있다. 빅4 회계법인 중 3월 결산법인인 삼정회계법인은 2023회계연도 매출이 8525억원이라고 밝혔다. 전년(8401억원) 대비 1.5% 증가했다. 지난해 10.3%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크게 감소한 것이다.
5월말 결산을 하는 안진회계법인의 사업보고서는 이달말 나올 예정이고, 삼일회계법인과 한영회계법인은 6월말 결산 결과가 9월에 나온다.
회계업계에서는 빅4 중 일부는 매출액이 줄어드는 곳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안진회계법인이 65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매출은 4477억원에서 5046억원으로 증가했다.
빅4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계개혁 이후 회계법인들이 회계사 채용을 급격히 늘렸고 인건비가 크게 상승하면서 비용 증가 요인이 발생했지만 매출이 늘지 않으면 이익이 줄어드는 구조가 됐다”며 “빅4의 매출이 전년 대비 다소 증가할 수 있지만 줄어든 곳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회계업계는 지난해까지 매출 증가 추세가 이어졌다. 2022사업연도 전체 회계법인 (220개) 매출액은 5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9%(6000억원) 증가했다. 다만 전년 대비 16.8%의 매출 증가를 보였던 2021사업연도에 보다는 증가폭이 줄었다. 회계감사 시장 매출 증가율은 11.7%에서 16.7%로 늘었지만 경영자문 매출 증가율이 28.8%에서 8.4%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영업이익은 1616억원으로 전년대비 20.1% 감소했다.
이 같은 상황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높아지면서 M&A가 잘 이뤄지지 않고, 기업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컨설팅 업무가 줄어들었다”며 “업계 1위인 삼일회계법인을 제외하고 다들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감사 시장에서는 덤핑 수주가 벌어지고 있다. 회계개혁 이후 도입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기업이 6년간 감사인을 자유 선임했다면 이후 3년은 금융당국이 지정)와 표준감사시간제 실행으로 감사보수가 상승했다. 시간당 감사보수 등의 현실화는 감사품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매출이 줄어든 회계법인들이 치열한 감사 수임 경쟁을 벌이면서, 지정 감사 기간이 끝난 기업들에 대한 감사보수가 크게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견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지정 감사가 끝난 기업들의 감사보수가 10% 가량은 떨어질 수 있다고 봤는데, 실제로는 30~40%까지 떨어졌다”며 “회계사들을 많이 뽑았지만 일감이 줄어들면서 감사보수를 낮춰서라도 수임을 하려는 경쟁이 치열하고, 회계개혁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분위기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회계법인들이 혹한기에 대비하기 위해 최대한 비용을 줄이는 긴축 경영에 나서면서 올해 신입 회계사 채용 시장도 급격히 얼어붙게 됐다. 정부는 올해 공인회계사 최소선발예정인원을 1250명이라고 발표했다. 최근 3년간 1100명으로 동결했다가 지난해말 크게 늘린 것이다.
지난해 감사원이 발표한 ‘공인회계사 선발시험’에 대한 감사결과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감사원은 “앞으로 공인회계사시험의 최소선발예정인원을 결정할 때 일반기업·공공기관 등 비회계법인과 회계환경 변화에 따른 회계법인 등의 수요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라”고 금융당국에 통보했다.
회계법인들의 회계사 수요는 줄어들고 있지만 비회계법인 등의 수요를 고려해 선발 인원을 확대한 것이다.
그동안 빅4 회계법인들이 신입 회계사 대부분을 채용해왔지만 올해 빅4의 회계사 선발 수요는 800명 안팎이 될 전망이다. 그나마 당국이 신입 회계사 채용 확대를 권유하면서 채용 예정 인원이 다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중견·중소회계법인들도 신입 회계사 수요가 크지 않아 빅4에 들어가지 못한 회계사들이 다른 회계법인에 취업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회계사 시험 합격이 곧바로 빅4를 비롯한 회계법인 취업 보장이라는 그동안의 인식이 앞으로 달라져야 한다”며 “변호사들이 사회 각 분야로 진출하는 것처럼 회계사들도 회계법인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로 활동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