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승인권 사각지대 ① 쌈짓돈 ‘예비비’

곳곳 규정 위반 논란…민주당 ‘사후승인권’ 사용하나

2024-08-19 13:00:04 게재

경호처 대통령실 이전 비용·본예산 초과한 ‘정상외교 경비’ 집중검증

특수활동비도 증액, 민주당 “심사 회피 … 승인하지 않을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배정 받아놓고 대규모 불용·이월 … 법·지침 위반”

정부가 국회에서 사전 심사를 받지 않는 예비비를 가지고 쌈짓돈처럼 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의 형식적인 ‘사후 승인제’를 악용한 결과로 보인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정부 예비비 요구·배정·승인·집행 과정에서 규정에 어긋난 부분을 대거 발견해냈다. 민주당은 예비비에 대한 ‘사후 승인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19일 국회 예산정책처는 ‘2023회계연도 결산 총괄 분석’ 보고서를 통해 예비비 편성과 집행내역의 예측 불가능성, 시급성, 보충성, 집행가능성 등을 제대로 고려했는지 등을 점검한 결과를 공개하면서 대통령경호처, 외교부, 기재부 등의 규정 위반사례를 지적했다.

2023회계연도 예비비 사용 총괄명세서에 따르면 대통령경호처는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한 경호경비시스템 강화 사업 등 경호임무 수행을 위한 예비비 편성’을 이유로 지난해 9월 25일에 86억7000만원을 배정받았다. 항목은 ‘경호보안 시스템 강화’였다. 이중 75억6000만원은 경호장비시설 개선 공사비와 자산취득비로, 11억원은 요인 및 국빈 경호활동 사업을 위한 특수활동비로 배정됐다. 경호실 특수활동비는 본예산에 이미 편성돼 있었던 67억5500만원까지 더해 78억5500만원으로 늘어났다. 그러고는 24억4000만원만 사용하고 54억9000만원을 올해로 이월했다. 7억4000만원은 불용처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경호처의 예비비가 대통령 이전 관련 예산이라고 보고 “대통령실 이전 완료 후 1년이 지난 시기에 본예산이 아닌 예비비를 지출한 것은 대통령실 이전비용을 축소하려는 눈속임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또 “요인 및 국빈 경호활동 사업은 대통령 및 국가요인 등 경호대상자에 대한 경호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경호보안시스템 강화사업에 포함될 수 없는 예산”이라며 “국민과 국회를 눈속임하여 특수활동비를 우회증액한 것”이라고 했다.

권인오 국회 예산정책처 예산분석관은 보고서를 통해 “(경호처 예비비 사용)공사 가능 기간 부족으로 공사 기간이 장기간 소요될 가능성은 예측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이고, 공사 기간이 장기간 소요될 가능성이 있었다면 해당 연도에 필요한 만큼만을 예비비로 신청하고, 차년도 예산 소요는 차년도의 본예산으로 편성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예비비 편성 조건인 예측가능성과 이월 불가 방침에 어긋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특활비도 예비비에서 가져와 = 대통령 정상회의를 위한 외교부, 문체부, 대통령 경호처 등의 예비비 532억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외교부는 ‘정상회의 참가 및 국빈 영접’ 과 ‘정상회의 개최’ 명목으로 각각 328억원과 78억원을 확보했고 대통령 해외순방 프레스센터 설치 운영을 위해 문체부는 76억원을 배정받았다. 대통령경호처의 ‘정상회의 경호활동 경비지원’ 명목의 예비비는 50억원이었다. 민주당은 “532억원 중 328억원을 정상 및 총리 외교에 사용했는데, 이 외교사업은 본예산에 248억원이 이미 편성되어 있었다. 본예산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예비비로 지출된 것”이라며 “그 중 증빙서류를 갖추지 않아도 되는 특수활동비 역시 역대 최대 규모인 4억5500만원을 지출했다”고 했다.

권 분석관은 “외교부의 ‘정상 및 총리외교’ 사업은 본예산으로 편성된 248억6800만원보다 더 많은 328억5900만원을 예비비에서 배정받았다”면서 “예비비 배정 이후 25억7200만원 규모의 세목조정을 단행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산이 면밀해야 하고 명세서에 정해진 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2023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어긋났음”을 지적했다.

민주당은 “예비비는 헌법에 따라 총액으로 국회의 의결을 얻어서 정부가 지출한 후 차년도 국회에서 승인을 얻도록 되어 있다”며 “민주당은 이번 결산심사 과정에서 부적절하게 집행한 예비비는 없었는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부적절한 예비비 집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정부는 예상하지 못한 긴급한 재정소요에 대비한 예비비를 사용원칙에 맞지 않게 쌈짓돈 쓰듯이 사용했다”고도 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정부의 예비비에 대해 사후승인을 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며 “정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보겠다”고 했다. 헌법 55조는 ‘예비비는 총액으로 국회의 의결을 얻어야 한다’면서 ‘예비비의 지출은 차기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돼 있다. 민주당은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제도적 대책에 대해서도 적극 검토해 추진할 것”이라고도 했다.

◆“여가부, 사전경고에도 사태 터지고야 예비비로” = 여성가족부의 ‘2023 세계잼버리 지원 사업’으로 151억7000만원의 예비비를 배정받은 것과 관련해 “자연재해, 안전문제 등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는데도 사전 준비를 하지 않고 사태가 발생한 이후에야 예비비를 통해 예산증액이 이뤄져 ‘예측 불가능성’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했다.

산림청 ‘산불진화헬기 임차’ 사업은 예비비로 369억3700만원을 배정받았지만 예비비 명세서 작성 때 임차헬기의 도입 수량을 과다하게 추계하여 33억5800만원을 이월했다.

기획재정부는 임시조직인 원스톱 수출수주지원단, 신성장전략기획 추진단, 조세개혁추진단 및 자율기구인 금융투자지원단의 운영을 위한 예비비 32억8300만원을 배정받았지만 46.6% 수준인 15억3000만원만 집행하고 절반이상을 불용했다.

‘안미영 특별검사’ 사업에 배정된 두 차례 예비비 배정은 이월 최소화를 규정한 예산 집행지침과 국가재정법에 위반되는 행위로 지목됐다. 회계연도가 끝날 때쯤인 지난해 12월 28일에 받은 예비비 6억6500만원 중 6억4700만원은 올해 운영경비로 사용하기 위해 이월됐다.

해양수산부는 예비비 59억9500만원을 배정받아 당초 예산에 없었던 ‘산지 위판장 수산물 안전관리’ 사업을 신설 추진했지만 사전 수요조사 부실, 사업타당성 부족 등으로 일부 사업의 추진이 중단되거나 그 실적이 저조해 39.4%인 23억6400만원이 불용처리됐다.

국무조정실은 당초 예산에 편성되어 있지 않은 ‘지속가능발전 국가위원회 운영’ 사업으로 예비비 4억2300만원을 배정받았지만 위원회와 추진단이 구성되지 않아 회의체 운영을 목적으로 배정된 예비비 1억7800만원을 불용했다.

권 분석관은 “예비비 배정은 국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실제 집행 이후 지출에 대한 사후승인을 받는다는 점에서 보충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다”며 “2023년의 경우 56조4000억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한 점을 고려할 때 예비비 배정 시 집행소요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관련 재원을 절감하였을 경우 이를 집행가능성이 보다 높은 사업에 투입하거나 재정증권 발행 또는 일시차입 소요를 줄여 이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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