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행동

계통 문제, 전력산업의 구조적 문제 해결해야

2024-08-21 13:00:01 게재

얼마 전 한전이 ‘계통관리변전소’ 지정을 통한 신규 발전 관리계획을 발표했다. 계통안정을 위해 수용 접속용량이 포화 상태에 가까운 변전소를 대상으로 신규 계통접속을 제한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번 조처로 전국 205개 변전소가 계통관리 대상으로 지정되면서 지역의 반발이 심하다.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해서는 계통확보가 필수조건인 마당에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의 발목을 잡는 정책이라는 비판이다.

망 확충은 에너지전환의 전제 조건

한전 발표에 따르면, 관리 대상 지역 태양광 사업의 경우 8월 31일 안에 신규 발전사업 허가를 받지 못하면 2031년까지 생산된 전기를 송출할 전력망을 갖지 못하게 된다. 즉, 현재의 계통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당분간 해당 지역에서의 신규 태양광 발전사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호남과 제주의 경우 지역 내 모든 변전소가 계통관리 대상으로 지정돼 태양광 발전사업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특히 접속 중인 국내 태양광 설비의 39%가 몰려 있는 호남지역에서는 이미 소규모 태양광 발전소의 계통연계 지연 용량이 타지역보다 3배 이상 높은 상황이어서 문제가 심각하다.

분산형 발전을 지향하며 지역에서 확산 중인 시민 협동조합 발전소 역시 이번의 망 접속 제한 조치로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작년 말 COP28에서 서약한 재생에너지 3배 확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2030년 NDC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치 21.6%의 달성조차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계통접속 제한 조치를 계기로 지금까지 정부가 보여준 전력망 부족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를 포함해 우리의 재생에너지 정책 전반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정부는 송배전망 확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장밋빛 발표를 거듭해 왔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8~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 동안의 송전선로 확충 실적이 계획 대비 겨우 3% 수준에 그쳤다. 더욱이 송·변전설비계획에서 수립한 전력망 확충량은 전력수급 계획이 목표한 신쟁생에너지 발전 설비 규모의 겨우 25%~59%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계통 조건에서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재생에너지 전환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한국의 현실은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전력망 구축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망 구축에 필요한 절차까지 단축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상황과 극히 대조적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은 OECD 평균치에도 못 미치는 낮은 전기 요금으로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에 송배전망 확충을 마냥 요구하기도 난감한 형편이다. 이렇듯 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수조건인 계통 망 확보조차 지지부진한 현실에, 풍력과 태양광, 배터리, 전기자동차 등 6차 산업 혁명의 핵심 기술조차 이미 중국에 추월당한 한국 경제의 미래가 심히 걱정스럽다.

부하를 줄이는 망 정책으로

지금의 계통 문제는 뒤늦게 송배전망을 늘리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보다 근본적이고 다양한 조처를 필요로 한다. 우선 무엇보다 에너지전환의 일차적 장애요인인 비정상적으로 낮은 전기가격부터 정상화함으로써 전력망의 과부하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지역별, 시간대별로 차등을 둔 신속하고 유연한 변동 요금제로의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더불어 지역 단위로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고, 초과 생산된 재생에너지를 인근 지역에서 소비하도록 수요를 분산하는 스마트한 산업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력망의 과부하도 줄이고 망 증설 시 발생하는 주민 갈등도 피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의 분산형 발전의 확산은 또한 P2H, V2G 등과 같은 신기술과 비즈니스 혁신을 촉진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 단위에서 주민공동체 주도의 에너지전환을 활성화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시대적 흐름인 재생에너지 전환에 적합한 새로운 차원의 계통 망 구축에는 막대한 비용과 장기간의 투자가 요구된다. 그렇기에 전력망을 국가 기간망으로 채텍해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 아울러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PPA, 전력직거래, VPP 등을 통해 자유롭게 전기를 사고팔 수 있도록 전력망을 개방하고 시장을 자유화하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에너지전환을 향한 과정에서 전력 계통 체계의 재구성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번에 불거진 계통 망 갈등이 부디 한국의 전력 시장과 정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해법을 찾는, 진정한 문제 해결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임성진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사장